연둣빛 꽃길 사이로 ‘내 인생’을 돌아보다
대청호 주변 오지마을 가는 길 |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
봄비가 촉촉이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제법 굵은 빗줄기가 흙길 위에 타닥거렸습니다. 길가의 흰 찔레꽃이며 보라색 오동나무 꽃들도 함빡 젖었습니다. 인적 없는 좁은 흙길을 구불구불 넘어 대청호의 그림 같은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섰습니다. 잠깐 비가 그친 사이로 산봉우리에는 구름이 걸렸고, 짙은 녹음의 골짜기마다 안개가 피어올랐습니다. 어디선가 뻐꾹새 한마리가 촉촉한 울음소리를 보탭니다. 대청호반의 오지마을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청평호나 충주호처럼 이름난 호수들은 잘 닦인 드라이브코스가 곳곳에 있고, 풍광 좋은 곳이라면 대개 으리으리한 별장들이 즐비합니다. 하지만 대청호 주변은 다릅니다. 호반을 따라가는 번듯한 국도 구간도 있지만, 해발 300~400m를 오르내리는 봉우리를 타고 넘으며 호젓한 오지의 산골마을로 이어지는 정감 있는 흙길들도 여태껏 남아있습니다. 대청호의 오지마을을 찾는 여정은 인적이 없는 조용한 숲길을 가는 맛뿐만 아니라 빼어난 절경을 만나는 기회도 선사합니다. 깊으면서도 또한 아름다운 길을 따라가는 여정입니다. 이런 오지로의 여정은 유쾌하고 떠들썩한 행락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번잡한 일상에 치여 삶의 여유를 찾고 싶을 때, 혹은 사방이 막혀 탈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그저 바람처럼 다녀와볼만한 곳이지요. 그 길 위에 서면 호젓한 숲길과 맑은 물빛 그리고 무엇보다 오지마을의 고요함이 도회지에서 지친 심신을 위로해주리라 믿습니다. 몇 곳의 군청과 면사무소를 들르고, 5만분의 1 지도를 짚고, 인근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찾아낸 대청호 부근의 깊은 오지마을은 3곳입니다. 대청호 인근에는 댐이 생기면서 오지가 된 마을들이 허다하지만, 그중에서도 첩첩산중의 연봉으로 둘러싸인 충북 보은군 회남면 은운리, 그리고 대청호에 마을을 묻고 뒤로 물러앉으면서 뒤로는 첩첩산중이 앞으로는 물이 길을 막아버린 충북 옥천군 군북면 용호리, 또 막지리를 찾아가봤습니다. 이곳들은 모두 이 땅에서 몇 안되는 오지 중의 오지입니다. 아니 오지라기보다는 ‘사라져가는 마을’이라는 쪽이 더 가까울 것 같기도 합니다. 외딴 곳에 깊이 숨어 있는 이들 오지마을을 한번에 다 돌아볼 수 있는 드라이브코스를 그려봤습니다. 적요한 숲길과 청정한 자연 그리고 낡은 집들과 때묻지 않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여정으로 안내합니다. 대전·청원·보은·옥천 = 글·사진 박경일기자parking@munhwa.com 물에 막히고 산에 덮이고, 구름도 울고 넘는 오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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