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맥을 찾아... 호남정맥 1구간 [주화산~슬치]

[ 2005년 1월18일. 화요일 ]
(주화산~웅치~만덕산~북치~416.2m봉~황산재~슬치)

날씨
대체로 흐림 (진안기온 : 최저 영하 5도,  최고 5도 )
동행
신샘. 세중
거리
도상거리 : 21.0Km  실제 추정거리 : 22.8Km (만보계 37,852걸음)
시간
<산행: 6시간 33분> + <식사 및 휴식 1시간 17분>=총 7시간 50분
경비
전주~세봉임도 택시 25,000 + 3일간 간식비 20,000 + 석식 14,000 + 숙박비 25,000원 = 총 94,000원

주 요 구 간 산 행 기 록

주요경유지점
시각
기사
주화산

09:50~55
도착~출정식~시작
583m봉
10:57~11:05
휴식
옛 곰티재
11:15
웅치전적비
11:40~50
휴식
오두재
12:20
만덕산 이정표 안부
12:27
만덕산 스테인레스 표지판봉
12:57~13:40
중식
제 5쉼터
13:58
마치
14:28
무명봉
14:55~15:00
휴식
곰치
15:33
416.2m봉
15:52~16:00
휴식
거목나무 안부(신전리재?)
16:30
고냉지 채소밭 안부
16:52~55
휴식
황산재
17:07
슬치
17:45
1구간 끝 (1박)

호남정맥 분기봉! 주화산까지의 스케치
목표가 없으면 나태해진다.
삶도 산행도 모두가 그렇다.
그들은 항상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준 적 없고 내가 가고픈 길로 가고 싶다면 성큼 그 길을 열어 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빈 가슴 속 깊이 참을 수 없는 목마름만 더하면서 이곳저곳을 방황하게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내 삶이나 산에 대한 갈망도 늘 주변 여건을 극복하지 못해 자신만 탓하고 실망하기만 했고 그런 사람이 어찌 나뿐이겠냐 하는 생각과 "그래도...." 라는 자위로 그 허전함을 위로하면서 "언젠가..."라는 불확실한 희망을 갖게 하였다.
신분변동이 생긴 금년부터 3월까지 한시적이기는 하지만 근무방법에 새로운 변화가 생겨 한 달에 2번의 휴가가 주어졌다.
철야교대근무의 특성상 당일산행에 만족해야 했던 나에게 2박3일간 산에 묻힐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이 좋은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까?
그래, 오랫동안 내 동경의 대상이었던 호남정맥이다.
이미 줄기잇기의 산행이 습관처럼 바뀌지 않았던가?
조금은 외롭고,
조금은 힘들고,
조금은 어렵더라도
길고 긴 호남정맥과 듬뿍 사랑을 나누자.
부소산부터 영취산까지 금남과 금,호남을 함께 하였던 멤버들과 함께 할 것을 권하였으나 일정이나 근무여건등이 맞지 않아 이번 호남길을 끝까지 동행할 파트너는 세중이 유일한 친구다.
신샘님께서 동참하지만 2월 이후에는 어려울 듯....
작년부터 마음에 두었던 호남정맥이지만 성큼 나서지 못해 그동안 책상 속에서 잠자던 사람과 산의 부록, 1:60,000지도를 이제야 꼼꼼히 살핀다.
2004년 5월판이라 시중에서는 이미 절판된 상태라 작년 가을, 그리매님께 부탁해 어렵게 구한 책이 이제야 빛을 보는 순간이다.
남진이냐? 북진이냐?를 놓고 고민한다.
책의 내용을 참고하기에는 남진이 보다 유리할 듯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참고할 산행기는 구간마다 세심하게 작성하신 높은산님의 산행기와 얼마 전 호남을 시작하신 조진대님의 최근정보까지 볼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모든 준비와 검토를 마치고 드디어 2박3일의 여정을 위해 교통 및 숙식 정보수집도 마친다.
첫날의 산행기점인 모래재휴게소까지는 전주~진안간 버스를 이용할 생각도 해보았으니 3명의 버스요금에 조금 더 추가하면 택시요금과 비슷할 것 같았고 전주역~모래재는 대개 20,000원~25,000원가량 요금이 나온다고 한다.
첫날과 마지막날은 큰 걱정이 없지만 둘째날 도상거리 29km가 넘는 장거리구간에 눈이라도 많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앞선다.
금,호남정맥을 하면서 2~3번 이용한 진안의 이경호 기사님(011-651-0048)에게 진안지방의 적설상태를 물으니 눈이 거의 쌓이지 않았다고 한다.
진안에서 전주까지 진안택시도 25,000원에 손님을 모셔다 드린다고 하기에 예전에 우리를 싣고 오른 세봉임도까지 실어다 줄 수 있으면 진안택시를 이용하겠다고 하니 쾌히 승낙한다.
모래재부터 세봉임도 고갯마루까지 20분이상 걸어야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지고 전주역에서 18일 아침 09:05분에 만나기로 한다.
신샘님, 세중과 서대전역에서 만나 07:30분발 KTX에 승차, 익산에서 무궁화호 열차로 환승, 전주역에 도착하니 09:00다.
잠시 후 이기사가 도착하고 모래재 휴게소에서 점심때 쓸 식수 한 병을 담아 공원묘지 공사가 한?진행중인 세봉임도길을 오른다.
그런데 너무도 처참하게 바뀐 지형, 진안사람인 이경호 기사마저 세봉임도로 오르는 길을 찾지 못해 차를 멈춘다.
차에서 내려 주변을 살핀 다음 골짜기로 향한 길로 내려와 공사로를 따라 조금 더 오르니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지한 시멘트 포장길이다.
세봉임도에 도착하니 09:40분경
공터에서 최종 산행준비를 마치고 3분가량 좀 가파르게 올라가니 금남정맥 졸업 후 10개월만에 조우하는 주화산, 전북산사랑회의 스테인레스 표식과 금.호남정맥, 금남정맥, 호남정맥이 갈리는 분기봉답게 수많은 표지기가 우리를 맞아준다.
▼주화산에서 간단히.....
입학식이라고 특별히 준비해온 것은 없지만 도상거리 400Km에 육박하는 먼 여정동안 변함없이 자신을 추스르면서 묵묵히 자연의 법칙에 따라 무사완주를 기원하는 간소한 의식도 치룬다.
 
주화산~웅치전적비(도상 5.1km. 실거리 5.8km. 만보계 9,625보)

전남 백운산(1,218m)까지 도상거리 398.7km의 머나먼 여정에 들어가기에 앞서 무사완주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첫 번째 표지기를 매달며 한번 더 마음을 가다듬는다.(09:55)
▼무사완주를 다짐하는 첫 표지기
 
1분가량 뒤, 넓고 판판한 공터에 억새가 무성한 헬기장을 지난다.
완만한 내리막을 내려오면 모래재를 지나게 되며 산비탈 왼쪽 아래에는 모래재 휴게소가 보인다.
모래재부터 4~5분 가량 좀 가파르게 쳐올려야 하는 봉우리를 오르다 뒤돌아본 세봉임도와 주화산 주변은 공원묘지 조성을 위해 파헤친 상처로 흉칙한 모습으로 변하였고 이 커다란 상처는 멀리 만덕산에서도 뚜렷하게 보인다.
작년 4월11일 금남,호남정맥에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 걸었던 세봉임도 주변의 모습은 희미한 기억속에서나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발걸음마저 무거워진다.
▼주화산(좌)과 공원묘지로 파헤쳐진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641m봉
 
첫 봉우리를 지나고 (10:10)
연이은 두어개 가량의 봉우리를 넘으면 잠시 가파르게 고도를 낮추었다가 완만하게 안부로 내려오니 이곳이 적천재로 생각된다.
좌, 우측으로 하산길이 있고 정맥은 직진으로 다음 봉우리로 향한다.(10:25)
안부에서 몇 걸음 올라가면 "1989년 / 신보 89-3호 / 200M / 대한광업진흥공사"라 적혀있는 삼각점만한 표지석이 등로 바로 옆에 박혀있는 것은 소양면 송정리 신보광산과 연관이 있는 듯 하다.
봉우리를 넘어가면 산죽지대가 나타나고 완만하게 이어가던 능선이 무명봉을 좌측으로 우회한다.(10:43)
진행할 만덕산의 만만치 않은 모습이 간간히 나무사이로 모습을 드러내고 벌목한 마무들이 뒹구는 514.5m봉을 지난다.(10:50)
▼진행할 만덕산과 익산~포항간 고속국도 건설현장(514.5m봉에서)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가다 약 5분가량 가파르게 올라간 봉우리(583m봉?)에서 첫 휴식을 취한다.(10:57~11;05)
583m봉에서는 우측으로 가파르게 내려가고 가파른 길이 완만해지면 한기의 묘지 를 지나게되는데 묘지에서 바라보는 마이산의 두 봉우리는 어느 곳에서 바라봐도 그 독특한 모습이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11:12)
▼살며시 두 귀를 치올리고 엿듣는 마이산
 
잠시 뒤, 철조망을 좌측에 두고 진행하다 옛 곰티재를 지난다.(11:15)
옛 곰티재의 안내판에는 『곰티재(能峙戰迹地)
이 재는 예전 신작로가 나기 전 진안~전주간의 주요 교통로였다.
진안~전주간 교통로로는 이 길 말고도 북동쪽으로 약 2km지점에 적내재가 있기는 하였으나 경사가 급하고 험하여 짐이 있는 사람이나 일반 길손은 이 길을 주로 택하였다고 한다.
이 길로 약 1.5km쯤 내려가면 완주군 소양면 월상리 신촌마을에 다다른다. 옛 고갯마루에는 으레 그러하듯 이곳에도 서낭당의 돌무더기가 있다.
 이 재는 역사상 유명한 전적지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은 조선 7도를 유린하였으나 이순신 장군의 수군이 바닷길을 지키고있어 오직 호남만을 넘보지 못하고 있던 차 당시 전라도 공략 책임자인 일본군 승장(僧將) 안고꾸찌가 지휘하는 제 6군 15,700명이 금산에 사령부를 설치하고 1만여명을 주공(主攻)으로 하여 금산~진주~전주로, 2천여명을 조공(助攻)으로하여 금산~진산~전주로 이어지는 전주선 협공작전을 전개했다. 그러나 웅치에는 전주성을 지키기 위해 전진배치된 조선의 의병장 황 박과 나주판관 이 복남, 김제군수 정 담, 해남현감 변 응정 등의 연합군이 침공해오는 일본군을 맞아 1592년 8월 14~15일 양일간에 걸쳐 이곳 웅치지역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조선연합군은 용전분투하였으나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이곳에서 대부분 장렬한 전사를 하였다. 이때에 이 지방 사천인 김 수(1542~1592)와 그 동생 김 정(1544~1592)도 의병으로 참전하여 큰 전공을 올리고 형제가 동시에 순절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의 주력도 이곳 전투에서 전력에 막대한 손실을 입어 전주성 근교까지 진격하였으나 전주성을 공략할 여력이 없어 퇴각하고 말아 웅치전이 호남을 방어하는 데에 결정적 공헌을 한 사실은 알 수 있다.
이 전투가 벌어진 날은 우연치 않게도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한산도에서 대첩을 이룬 날이기도 하며 이 양대 전투가 임진왜란 때에 전세를 조선 쪽으로 역전시키는 결정적인 전기가 되게 하였다.
이 재 부근과 연결되는 능선 곳곳에서는 당시 전사한 병사들의 시신을 합장한 듯한 돌무덤이 산재한다.2001년 12월 일  진 안 문 화 원』   
"그런데 저런 `웅`자가 있나? 분명 `능`자 인데...... 혹 熊을 잘못?"
좌,우측으로 뚜렷한 길이 있고 신정호와 부귀산이 보인다,
▼부귀면의 진산이며 금남,호남정맥 주요 봉우리의 하나인 부귀산
 
철조망 옆길을 따라가면 부서진 철문이 있고 여섯갈래로 길이 갈리는 안부에 닿는다.(11:22)
많은 정맥표지기들이 철조망 옆을 따라가도록 유도하고 작은 봉우리를 살며시 우측으로 우회하면서 철조망과의 동행도 끝난다.(11:23)
583m봉 이후 완만하게 이어오던 길이 오랜만에 4~5분가량 가파르게 오르니 600m급의 무명봉이며 이곳에서 우측으로 휘여진다.(11:35)
제법 가파르고 긴 내리막이 끝나면 묘지지대가 나오고 그 아래로 보이는 웅치전적비를 빤히 바라보면서 내려오면 웅치전적비에 도착한다.(11:40. 9,625보)
▼웅치전적비
 
웅치전적비주변은 상당히 넓은 공터를 가지고 있으며 깔끔하게 정돈되었고 옛 곰티재의 안내판 내용과 융사한 내용의 글귀가 적혀있다.
점심식사는 만덕산에서... 그전에 필요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휴식을 취하면서 찹쌀떡과 신샘님이 준비해온 사골국물을 한 컵씩 마시고 곰재(웅치)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11:50)
 
웅치전적비~만덕산(도상 2.7km. 실거리 3.4km. 만보계 5,655보)
시멘트포장길을 따라 내려가면 웅치전적지 기념각을 지나 곰재(웅치)에 내려서니 넓은 비포장길이 올라와 있고 진안군 부귀면의 경계표지판이 있다.
정맥은 도로를 건너 바로 앞의 산등성이로 이어지며 많은 표지기가 초입을 지키고 있다.(11:53)
▼웅치 전적지 기념각
 
웅치전적지(熊峙戰迹地)
전라북도 기념물 제 25호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이곳은 임진왜란 때 우리의 조상들이 왜적에 맞서 전투를 벌인 현장이다. 왜군은 해로를 통해 곡창지대인 전라돌르 장악하려 했으나 이순신의 활약으로 해로가 막히자 육로로 침공할 계획을 세웠다. 왜적은 무주, 금산, 진안 등지에 군대를 집결시키고 선조25년(1592년) 7월 8,9일에 웅치로 쳐들어왔다. 김제군수 정 담, 나주판관 이 복남, 의병장 황왜적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였다. 왜군은 우리 군의 충성심과 용맹함에 감탄하여 우리 병사의 시신을 묻고 추모하는 뜻을 담아 <조조선국충간의담(弔朝鮮國忠肝義膽)>이라고 쓴 푯말을 세웠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선열들의 혼이 가슴깊이 느껴지는 곳이다.』 
"음 이곳 웅자는 熊로 되었으니 조금 전 옛 곰티재는 잘못 쓴 글씨가 틀림없구나"
옛 선조들의 한과 충절을 되새기게 하는 곰재를 뒤를 하면 만덕산 오르막이 시작된다.  
두 번에 걸친 가파른 오르막을 극복해야 500m급의 무명봉에 올라설 수 있으며 이곳에서 등로는 왼쪽으로 휘어나가는데 오름길 도중 나무사이로 이따금 운장산의 모습을 볼 수 있다.(12:03)
▼간간히 나무사이로 모습을 보여주는 운장산
 
완만하게 이어가던 능선길이 직진의 능선을 버리고 좌측으로 약간 가파르게 내려가기 시작하고 그 시작점에는 많은 표지기가 있어 혼란스럽지 않다.(12:14)
넓은 밭이 나타나고 한쪽은 검정색 차양망이 쳐진 인삼밭이며 포크레인 한 대도  방치된 오두재로 내려선다.(12:18)
밭의 우측 끝자락을 따라가면서 이어지는 산줄기로 붙는다.
오두재에서 이어진 첫 봉우리는 정면으로 오르지 않고 우측의 비탈면을 우회하여 산등성에 올라붙는다.(12:22)
잠깐의 내리막에 약간의 산죽지대가 나타나고 곧 본격적인 만덕산 오르막이 시작된다.(12:25)
▼만덕산 오름길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자 안부가 나오고 상달저수지가 보이는 왼쪽에 희미한 길이 열려있고 우측은 일반 산악회 표지기와 뚜렷한 길이 있다.
안부의 이정표는 우측은 원불교 훈련원 0.7Km 자나온 방향은 헬기장 1.6km 정상은 1.7km를 가리키고 있다.(12:27)
완만한 오르막을 따르면 군청색 나무의자 2개있는 제2쉼터를 지나고 (12:36)
이후부터 가파른 오르막에 통나무계단과 바위지대도 나타난다.
▼만덕산 전위봉을 향해 바위지대를 오르는 일행
 
바위지대가 끝난 첫 봉우리에는 작은 조망바위가 있다.
주변일대는 물론 멀리 운장산과 오늘의 시발점인 주화산부터 이어온 호남정맥줄기는 물론 소양면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며 만덕산 우측 산자락 아래의 미륵사는 손을 뻗으면 금방 잡힐 것 같은 느낌이다.(12:43)
▼운장산(가장 멀리 희밈한 능선)과 소양면 신촌리
▼만덕산 아래 자리잡은 미륵사
 
완만하게 바뀐 길이 이정표<정상 0.5km / 헬기장 2.8km>를 지나 조금 내려오면 산죽이 있는 우측비탈 쪽으로 가파른 내리막길이 보이는데 이 길은 미륵사로 통하는 듯.....
이동통신시설물로 생각되는 건물이 있는 봉우리 바로 아래에 위치한 조망바위에 올라 주변을 살피니 조금 전의 조망바위에서 바라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좀 더 고도를 높였음인지 느낌은 더욱 시원스럽다.(12:52)
▼모래재(좌)부터 이어온 호남정맥 즐기
▼진안군 성수면과 마령면을 가르는 산줄기 밑에 상달길과 중달길, 하달길
▼소양면(북쪽)방향의 조망
 
곧 스테인레스 표식[호남정맥 만덕산(761m)/ 슬치 13.2km치재 2.5km]과 이동통신시설물(?)이 있는 만덕산에 도착한다.(12:57. 5,655보)
20여명 가량의 단체 산행객이 식사를 하고 있으며 지도에 표기된 만덕산 정상은 우측(서)에 있는 다음 봉우리다.
▼호남정맥의 주요 봉우리마다 설치된 전북산사랑회의 스테인레스 표식
 
Y자형으로 갈려나가는 이곳에서 정맥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많은 사람을 피해 좌측으로 10여m가량 내려오니 5~6명 가량이 둘러앉아 식사하기에 적당한 바위조망지가 있다.
▼진행할 봉우리
▼다음에 이어갈 호남정맥 갈미봉구간(?)과 멀리 모악산도 보인다.
▼만덕산 정상 
 
두 준족의 뒤를 따라왔기에 지도는 물론 산행기도 충분히 살피지 못하면서 진행하였는데 예상보다는 조금 빠르게 진행하였다.
좀 느긋한 마음으로 라면과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커피까지 마시는 여유를 갖고 출발한다.(13:40)

 

만덕산~416.2m봉(도상 6.9km. 실거리 7.3 km. 만보계 12,130보)
만덕산을 떠나면 곧 약간의 바위지대를 지나게 되며 이 바위지대에서는 진행할 정맥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진행할 정맥능선
 
곧 해발 750m에 세워진 이정표<정상 0.3km / 원불교훈련원 2.3km / 정수사 3.1km>와 우측이 천길단애를 이룬 멋진 바위날등을 지난다.(13:48)
▼3~40m가량의 바위 날등지대 (앞의 암봉은 좌측으로 우회함)
 
시커먼 암봉을 좌측으로 우회하여 다시 산등성이 오르면 곧 이정표 <마치 / 온천개발지역 / 정상 1.5km>와 의자가 있는 제5쉼터를 지난다.(13:58)
▼제 5쉼터
 
제5쉼터의 다음 봉우리를 가파르게 오르면 길은 우측으로 꺾여 나가고(14:06)
완만한 능선이 한동안 이어지다 3분가량 가파르게 올라온 봉우리에서 이번에는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간다.(14:17)
커다란 고목 한 그루가 있는 안부, 지도를 살피니 마치로 생각된다.
좌, 우측으로 뚜렷한 하산로가 보이는데 좌측은 관촌면 회봉리 상회부락으로, 우측은 완주군 상관면 마치리의 정수사나 원불교 수련원으로 연결되지 않나 생각된다.(14:28)
▼마치의 고목나무
 
마재를 지나 첫 봉우리를 지나고(14:33)
3~4분가량 제법 가파르게 올라온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휘여지면 키작은 나무와 넝쿨이 뒤섞인 잡목지대가 나타나는데 오르내림은 거의 없다.(14:46)
잡목지대를 따라 한동안 이어가던 평탄한 길이 완만하게 고도를 조금 높인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는데 그 길목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발 길을 잇는다.
(14:55~15:00 . 7,228보)
잡목지대는 좀 더 이어지고 큰 고도차없이 진행하던 길이 완만하게 오른 봉우리에 임도처럼 넓은 길이 나타나 우측으로 휘어나간다.(15:26)
주변의 산비탈은 채소밭으로 개간한 모습들이 많이 보이고 사람과 산의 부록으로 나온 지도에 슬치(현지주민은 곰치라 함)로 표기된 곳을 내려온다.(15:32)
▼곰치
 
조금 더 진행하면 완주군에서 설치한 이정표에 <만덕산 4km / 죽림온천 9km / 임실군>이라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지나온 만덕산이 진행할 방향, 죽림온천이 지나온 방향 그리고 임실군을 가리키는 방향표도 완전히 반대로 설치되어 잠시 우리를 혼난스럽게 만들기도 한다.(15:35)
넓은 길을 따라 약간의 소나무가 숲을 이룬 곳으로 들어가니 묘지 한기가 있고 묘지부터 1분가량 살며시 오른 봉우리에서 우측의 희미한 산길로 들어간다.(15:41)
직경 2~30cm는 될 법한 나무들을 드믄드믄 잘라버린 간벌지대가 나오고 마침 이곳에서 간벌한 나물르 고르고 있는 주민 한 분이 계셔 슬치와 북치에 대해 물어보니 조금 전 지나온 곳이 북치, 슬치는 휴게소가 있는 곳이라 대답한다.
또 만덕산은 우리가 지나온 곳 외에는 동명의 만덕산이 주변에 없다고 하니 완주군에서 세운 이정표는 방향선택이 완전 잘못됬다는 결론이다.
▼자주 눈에 띄는 고냉지 채소밭
 
삼각점이 있는 416.2m봉!
오늘 산행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삼각점이다.
▼416.2m봉의 삼각점
 
지도상에 표기된 슬치까지의 소요시간은 3시간30분, 하지만 복사해온 산행기는 2시간30분가량 걸렸으니 어둡지 않은 시간에 산행을 마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자료를 살피며 휴식을 취한다.(15:52~16:00 . 4,902보)
 
416.2m봉~슬치(도상거리 6.3km. 실거리 6.3km. 만보계 10,442보)
봉우리를 완만하게 올라 왼쪽으로 내려간다.(16:07)
낙엽송조림지가 나타나고(16:09)
그리 가파르지 않은 듯 한데 좀 힘들게 느껴지는 봉우리에 오르니 벌목한 나무들이 제법 많고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간다.(16:16)
벌목한 나무들이 등로주변에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어 이들을 피해 진행하는 발걸음은 더뎌지며 눈도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16:27)
큰 나무 한 그루와 좌. 우측으로 길이 있는 곳, 우리가 사용하는 지도에 의하면 이곳이 신전리재로 생각된다.(16:30)
▼신전리재(?)의 거목
 
왼쪽으로 방향을 꺾어 오르다 정수리 직전 50m가량 전에서 왼쪽으로 방향이 틀어지고 저 밑에는 도로가 보인다.(16:39)
잡목과 넝쿨나무가 많은 능선상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건너편에 고랭지 채소밭이 보이는데 높은산님은 저곳이 황산재라고 했다.(16:49)
▼밭으로 조성된 황산재(?)
 
고랭지채소밭으로 내려와 먼저 도착한 일행이 건네는 귤을 먹으며 지도를 살피니 황산재는 앞의 봉우리 하나를 더 넘어야 할 듯...(16:52~55 . 5,312보)
채소밭 우측의 농로를 따라 오르면 농로가 끝나는 곳에 철근만 남은 비닐하우스가 자리잡은 공터가 있고 정맥은 공터로 직진, 낙엽송 숲으로 들어간다.(16:59)
이어지는 무명봉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가면 곧 고사리와 싸리나무등이 뒤엉킨 잡풀지대가 나타난다.
키 작은 참나무와 가시넝쿨나무를 헤쳐 내려오면 벌목지대가 나오고 직경 30cm는 족히 됨직한 소나무마저 무참히 쓰러뜨렸다.(17:05)
약간의 갈대와 넝쿨, 잡풀이 우거진 곳, 이곳이 황산재가 아닐런지....(17:07)
황산재부터는 임도처럼 넓은 길을 따라 오르고 농로 좌측에 깔끔하게 정돈된 3기의 묘, 그리고 그 묘지들 위에는 비석을 갖춘 묘지 1기가 더 있는 봉우리에 당도한다.
넓은 길은 이제부터 더욱 더 넓어지고 단정한 모습으로 바뀌고 2~3분 가량 뒤 시멘트 길로 나온다.(17:15)
좌측에는 인삼밭이 있고 그 옆으로 난 시멘트 길을 따라 50m가량 내려오다 우측의 비포장 길로 들어가면 곧 시멘트길이 다시 나타난다.
▼정면 중앙 뒷 산이 박뫼이산
 
시멘트 길과 비포장 길을 반복하며 소나무가 있는 시멘트 길을 따라 내려가면 시멘트 길이 T자형으로 갈리는 삼거리를 만난다.
이 삼거리에서 왼쪽의 박뫼이산을 바라보며 진행한다.(17:26)
시멘트 길은 계속 이어지다 Y자형으로 갈라진다.
좌측(직진에 가까움)의 시맨트 길을 따르고 잠시 후 올라서는 고갯마루에서 시멘트 길이 비포장농로로 바뀌면서 좌측은 인삼밭이 자리잡고 있다.(17:30)
농로를 따라 2분가량 진행하면 작은 산등성이를 두고 직진과 우회의 두 갈래로 길이 갈린다.
산등성이를 향해 직진으로 오르는 우측비탈에는 흰 갓을 씌운 듯한 의 묘비가 인상적으로 보인다.
임도처럼 넓은 길을 따라 산등성이로 오르고 이 작은 봉우리를 넘어가면 낮은 산비탈을 인삼밭이 온통 차지했고 정맥은 이 산의 정수리에서 우측으로 내려갈 것 같은 지형이다.
그런데 많은 표지기가 농로수준의 우측 길로 유도하고 그 표지기를 따라 몇 걸음 내려오니 길 왼쪽에 4기의 묘지가 자리잡고 있다.(17:36)
풀이 좀 우거진 농로를 따라가면 묘지 몇 기가 좌측에 있는데 정확한 마루금은 이 묘지의 위에서 내려와야 되는 듯...
잠시 뒤 SK주유소와 슬치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르니 잡목이 무성한 비탈을 치고 내려간 흔적이 어지럽게 나있다.
잡목을 헤치며 SK주유소 간판을 향해 내려오다 내일 진행할 안슬치와 실치재일대를 관찰하며 정확한 마루금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저기로 물줄기가 하나 생기고 저쪽도 생기니 저 도로를 따라가다 밭을 가로질러 이동통신탑으로 진행 그리고 저 고갯마루에서 우측으로...."
▼내일 이어갈 슬치와 안슬치 전경
 
족적을 따라 내려오니 정든온천장 마당이고 우측에는 SK주유소가 자리잡았으며 주유소 옆에는 슬치휴게소가 보인다.
"자~ 이 온천장에 여장을 푸는 것으로 1구간을 마칩시다."(17:45 . 5,130보)
 

슬치에서의 첫 밤 

정든온천장 2층에 숙소를 정하고 저녁을 먹으러 슬치휴게소로 향하며 아침 일찍 식사할 곳이 있느냐 물으니 슬치휴게소 주인이 이 정든온천장을 겸하고 있으니 상의해 보라고 한다.
슬치휴게소는 식당 뿐만 아니라 왠만한 생필품도 준비되어 있으며 마루금에서 불과 50m가량 밖에 떨어지지 않아 산행중 필요한 물품을 구하거나 도중 숙식지로 아주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저녁은 김치찌개(1인분 4,000원)와 신샘님께서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반주로 소주 한 병을 시켰는데 반찬도 깔끔하고 맛도 좋아 모두들 4,000원짜리 식사로는 너무 훌륭하다고 입을 모은다.
내일 아침 식사가 문제라 몇 시부터 영업을 하느냐 물으니 영업시간은 07:00~23:00인데 몇 시에 아침식사를 할거냐 묻는다.
04:30분 경에는 먹어야 된다고 하니 좀 어렵다는 표정을 짓더니 숙소도 자기 집에 정했으니 서비스로 해 준다고.....
아들로 보이는 젊은이는 난색을 표한다.
우리 역시 미안한 생각이 들어 결국 아침은 여관에서 누룽지와 라면을 끓여 간단히 해결하기로 하고 명함 한 장을 받고 숙소로 돌아온다.
(정든온천장 063-643-5688. 슬치휴게소 063-943-6555. HP 016-9245-5688)
식사를 하러가며 방이 차가우니 따뜻하게 해달라고 하였는데 식사를 하고왔어도 별 차이가 없다.
항의성 전화를 받은 남자주인, 그제야 생각났는지 욕실의 밸브를 열어준다.
하지만 다음 날 새벽, 우리가 여관을 나설 때까지도 방은 비록 춥지 않았으나 따끈따끈할 정도로 온도가 오르지 않았음은 옥중의 티로 생각되었다.
온천수에 피로를 씻어내기 위해 욕실에 든 사이 탁상의 성냥갑을 보니 반갑기 그지없다.
"비사표 성냥" 일회용 라이터가 나오기 전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했고 내 고향의 대표적 향토기업이었는데.......

▼추억

 

세월따라 기술발달에 따라 그리고 편리성에 따라 부침을 달리해야 하는 거센 흐름은 그 역행하지 못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게 한다.
주인 아주머니 말대로 죽림온천의 온천수와 같은 수질이기 때문인지 물은 아주 미끄럽고 좋았고 가장 관심사인 9시 뉴우스의 일기예보가 끝나자 핸드폰의 알람을 04:00로 맞추고 잠자리에 든다.
"내일 아침부터 기온이 급강하 대한추위가 시작된다는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