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등 뻐꾸기

 

     

     

          

            검은등 뻐꾸기

 

 

뻐꾹채

 

          

 

 

초여름 길목 뻐꾹새 울 때 피어요 [한겨레 2004-05-16 08:55]


홀·딱·벗·고, 홀·딱·벗·고….

연두색으로 일렁이는  국립공원 이 산 저 산에서 새벽녘부터 홀딱 벗자고 ‘홀딱새’가 울어댄다. 홀딱새는 그 울음 소리가 마치 ‘홀·딱·벗·고’라고 들린다고 하여, 산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산사람들이

검은등 뻐꾸기를 일컬어 부르는 이름이다.


검은등뻐꾸기는 뻐꾸기와 비슷해 구별하기가 쉽지 않지만 소리로 쉽게 구별된다. ‘카. 카. 카. 코~’하고 우는데 앞 세 음절의 높이가 같고 마지막 한 음절은 낮아 마치 ‘홀딱벗고’처럼 들린다고 홀딱벗고새로 불린다. 늦봄부터 녹음 짙은 한여름까지 산을 올라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검은등뻐꾸기 울음소리를 들어 보았으리라. 검은등뻐꾸기도 뻐꾸기와 마찬가지로 다른 새들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아놓고, 그들로 하여금 새끼를 양육하게 하는 얌체족이다.

 

강원도 지방에서는 홀딱새가 울면 모내기를 시작한다. 모내기가 끝나가는 5월 중순부터는 뻐꾸기가 이 산 저 산을 날아다니며 ‘뻐꾹뻐꾹’ 울어대는데 뻐꾸기가 울면 이미 모내기는 끝나갈 무렵이다. 뻐꾹새 소리를 듣고 모내기를 하면 이미 한 해 농사로는 때가 늦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뻐꾹새가 울기 전에 모내기를 마치려고 농촌의 일손은 바쁘기만 하다.

 

검은등뻐꾸기와 뻐꾹새가 울 즈음의 산야는 그 속에 푹 파묻히고 싶도록 아름답게 변해가는 계절이다. 가장자리에 다섯 개의 하트 그림을 곱게 돌려 매놓은 듯 보이는 앵초와 큰앵초가 분홍색으로 곱게 단장을 하고, 햇볕이 잘 드는 돌무지 척박한 땅에는 뻐꾹채가 웅장한 모습(뻐꾹채는 우리나라 야생화 중에서 꽃이 제일 큰 무리 중의 하나이다.)으로 마지막 봄산을 수 놓는다. 뻐꾹새가 울 즈음에 꽃이 피기 때문에 뻐꾹채라는 이름을 가진 이 식물은 꽃이 탐스럽게 크고 색상이 고와, 절굿대와 더불어 관상용으로 대량 생산이 기대되는 식물자원이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단 한 종 밖에 없으며 꽃은 한 줄기에 한 개씩 5월에 핀다.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가는 길목에 피는 뻐꾹채는 우리 눈을 가장 즐겁게 해주는 아름다운 빚깔의 대명사임에 틀림없다. 꽃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이 꽃을 자주 책상 위에 꽂아 놓고 매우 끈질긴 뻐꾹채의 인내를 배운다. 처음에는 순박한 시골처녀의 나들이 옷 색깔처럼 싱싱하기만 하던 눈부신 분홍색 뻐꾹채의 꽃송이가 꽃병의 물속에 담긴 채 서서히 아름답던 색상을 잃어가며 말라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 보면서 삶의 희노애락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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