懸岩寺

庵如鵲巢懸斷涯
五家耐飢待覺來
淸川碧湖君爲民
碧山颯風一枝梅


까치집같이 절벽위에 매달린 작은 절
오가리에서 배고픔 참으며 부처님 오기만 기다렸지
맑은 내 푸른 호수 되고 임금대신 백성이 주인되니
벽산의 삽상한 바람아래 일지매 피네




까치집처럼 절벽에 매달린 절
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31)-구룡산 현암사
임윤수(zzzohmy) 기자   
▲ 대청댐 잔디광장 건너쪽, 구룡산 중턱에는 절벽에 매달린 듯한 현암사가 있다. 청남대가 자리하고 있는 대청호와 청남대가 들어선 주변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 눈에 내려다보듯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다름 아닌 대청댐 잔디광장 건너 쪽 구룡산에 까치집처럼 절벽 위에 자리한 현암사가 그 명당자리에 해당한다.
ⓒ 임윤수
야사(野史)만큼이나 베일에 가려 많은 궁금증을 생산하던 청남대도 막상 일반에게 공개되고 나니 별 것 아닌 모양이다. 지척에 두고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결국 이런저런 소문만 무성했지 사람 사는 것 다 그렇고 그런지 아방궁 같다느니 뭐니 하는 별다른 이야긴 들리지 않는다.

황금욕조에 순금 세숫대야, 철렁이는 물침대니 뭐니 하면서 잔뜩 궁금증만 부풀려 놓더니 막상 공개되니 그런 이야긴 쏙 들어간 것으로 봐서 그냥 사람 사는데 사람 쓰는 물건 정도가 있는 모양이다.

탈로 많고 말도 많던 청남대는 대전과 청주를 경계로 자리하고 있는 대청댐 한적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일국의 나라님인 대통령 별장이 들어설 정도라면 그 풍광이나 산세가 만만치 않음을 짐작키는 어렵지 않겠다.

▲ 팔각정에서 주차를 하고 조금 내려오면 가파른 철제 계단으로 현암사를 오르는 길은 시작된다.
ⓒ 임윤수
그 좋은 풍광을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는 청남대도 좋겠지만, 그 좋은 곳에 자리한 청남대가 들어선 주변을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꽤나 흥미 있을 듯싶다. 바로 그 청남대가 자리하고 있는 대청호 주변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 눈에 내려다보듯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다름 아닌 대청댐 잔디광장 건너 쪽, 구룡산에 까치집처럼 절벽 위에 자리한 현암사가 그 명당자리에 해당한다.

현암사는 대청댐 잔디광장 맞은 편인 북쪽의 구룡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백제 전지왕 3년(406년) 달솔해충(達率解忠)의 발원으로 고구려 승려 청원선경(淸遠仙境)대사가 개산(開山)하여 창건하였으며 통일신라시대 원효대사 등의 중창이 있었다고 한다.

▲ 계단을 올라 얼마쯤 오르다 보면 가쁜 숨 고르고 짊어진 업 놓고 가라는 듯 항상 비어있는 빈자리가 있어 찾는 길이 가벼워진다.
ⓒ 임윤수
절의 한문이름에서 알 수 있듯 마치 바위산 절벽에 매달려 있는 것 같다고 해서 현암사(懸巖寺)라 하였다니 그 지형과 위치가 짐작되리라 생각된다. 현암사엘 올라보면 정말 이름대로 절이 절벽 위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발이라도 헛디디면 퍼렇게 굽이치는 대청호에 풍덩 빠질 듯하다.

한 여름 바지가랑이 둥둥 걷고 난간에라도 걸터앉으면 시원한 강바람에 시간가는 줄 모를 듯하다. 매달린 듯하고 떨어질 듯한 긴장감이 가끔은 가슴을 후련하게 해 준다. 비록 몸을 던지지는 못하지만 겹겹이 짊어진 이런 저런 업과 집착을 떨쳐버리기엔 딱 좋은 자리다.

팔각정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흐르는 물길 따르듯 조금 아래쪽으로 걷다보면 우측으로 철제 계단이 나타난다.

▲ 이것도 문명의 혜택이라고 해야하나 모르겠다. 지게질조차 쉽지 않을 만큼 가파른 현암사에서 유일하게 물건을 오르내릴 수 있는 도르래 삼태기가 눈길을 끈다.
ⓒ 임윤수
오랫동안 차에 배인 엔진소리도 털 겸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다보면 발아래 드러나는 대청호가 점점 넓어진다. 계단을 올라 얼마쯤 오르다 가쁜 숨 고를 겸 뒤돌아보면, 크고 작은 산봉우리에 몸 감추듯 숨어 흐르던 물줄기들이 따라온 듯한 곳을 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물줄기들이 향한 곳의 정점, 아홉 줄기의 물이 모여들기에 원효대사께서 구룡산이라 하였다는 그 곳에 현암사가 있다.

현암사란 절 이름은 이곳에 들러 수도를 하시던 원효대사가 지은 것으로, 절이 위치한 산을 중심으로 아홉 줄기의 강물이 뻗어다 하여 산 이름을 구룡산이라 하였고 절이 벼랑에 매달린 듯하다 하여 현암사((懸巖寺)라 하였다고 한다.

▲ 가파른 비탈에 겨우 틀어 앉듯 전각들이 자리하고 있다.
ⓒ 임윤수
원효대사는 천년 후 구룡산 앞에 세 개의 연못이 조성되면 결국 임금왕(王)자 지형이 되며, 지세에 따라 국왕이 살게 되리라는 예언을 하였다는 전설도 있다. 대사의 혜안이 헛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결국 대청댐이 들어섬으로 구룡산 앞에는 세 개의 연못이 형성되었으며 국왕인 대통령이 기거하는 청남대가 들어서지 않았는가.

현암사는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흥미 있는 전설도 갖고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접근이 만만치 않은 옛날, 현암사는 무척 가난하여 스님들이 들어와도 먹고 살 방법이 없어 자주 떠나곤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젊고 착하며 불심이 강한 스님이 현암사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 젊은 스님은 열심히 기도하며 절대로 이 절을 떠나지 않으리라 맹세하였다.

▲ 삼성각 앞은 비쭉한 산죽들이 아늑할 만큼 눈가림을 해 준다.
ⓒ 임윤수
절을 떠나지 않겠다는 각오를 세운 스님은 냉수로 공복을 채우고 염불을 하다 너무 허기가 져 기진맥진하여 자신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졌다. 그런데 꿈속에 장삼을 걸친 한 노승이 나타나 '기특한지고'하면서 얼굴을 어루만지더니 아궁이를 뒤져보라고 했다.

현실인 듯 너무 생생한 꿈에 놀라 잠에서 깬 스님이 꿈속의 노승이 일러준 대로 아궁이를 보니, 한 명이 한끼정도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쌀이 있었다 한다. 젊은 스님은 꿈속에 노승이 사라진 쪽을 향하여 합장 삼배하고 그 쌀로 밥을 지어 부처님께 마지를 올린 후 자신도 공양을 하여 기운을 차렸다.

▲ 한 발을 내딛으면 대청댐에 닿을 듯하다.
ⓒ 임윤수
그때부터 스님은 기도에 전념하다 때가 되면 아궁이에서 쌀을 꺼내 부처님께 마지를 올리고 끼니를 연명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로 현암사에 오는 스님들은 아궁이에서 나오는 쌀로 끼니를 해결하며 수도에 정진할 며 불심을 지켜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욕심 많은 스님이 절 살림을 맡아 살게 되었고 그 욕심 많은 스님은 매 끼마다 꼭 한 사람 분량의 쌀만 나오는 것에 불만을 갖게되었다. 한꺼번에 많은 쌀이 나오면 절도 좀더 크게 짓고 그러면 자신의 위세도 조금 더 커질 것이라는 집착을 갖게 되었다.

▲ 크고 작은 산봉우리에 몸 감추듯 숨어 흐르던 물줄기들이 구비 구비 따라서듯 한 곳을 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임윤수
결국 그 욕심 많은 스님은 더 많은 쌀을 얻기 위해 아궁이를 마구 쑤셔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때부터 아궁이에서 쌀은 나오지 않고 휑한 찬바람만 나왔다고 한다. 지나친 욕심은 주어진 복조차도 잃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전설인 듯하다.

1984년부터 주지로 주석중인 주지 도공(道空)스님은 20여 년 불사원력을 놓지 않아 현재의 대웅전을 비롯하여 용화전, 산신각, 요사채 등을 건립하였으며 대웅전에서 100여m 떨어진 곳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5층 석탑도 조성하여 놓았다.

▲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5층탑이 청남대를 향하여 서 있다.
ⓒ 임윤수
구룡사가 들어선 터는 그 기가 왕성하여 허약한 사람은 이겨낼 수 없는 곳이라 한다. 자칫 사기(邪氣)로 비출 수 있는 그 왕성한 기도 용띠인 주지 도공스님에겐 선을 행하고 구도의 길을 가는데 도움이 되는 모양이다.

아홉 줄기의 물이 모인 구룡산과 용이라고도 표현하는 임금님(대통령)이 기거하는 처소였던 청남대 그리고 주지스님의 띠인 용이 어떤 상관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한겨울 산사를 따뜻하게 해 중 장작이 스님들의 머리카락만큼 가지런하다.
ⓒ 임윤수
오늘도 스님께서 절벽처럼 가파른 절 길을 오르내리며 삼용의 조화로 태평성쇠가 되길 기도하고 계실 거라는 기대감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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