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가 혼자보려 했던 仙境 500년전 아름다움 그대로… |
경북 봉화 ‘음미’ 포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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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암 봉우리와 그윽한 절집이 빚은 풍경이 마음 속에 또렷히
인화되다. 경북 봉화의 청량산은 저 스스로 품고 있는 속살의 모습을 들여다봐야 하는 산이다. 둔탁한 중등산화나 날렵한 릿지화, 혹은 질긴 자일로 중무장한 ‘산꾼’이 아니라면, 산에서 기대하는 풍경은 보통 두 가지다. 첫번째는 산 스스로가 안고 있는 풍경이다. 깊은 계곡이며, 수려한 암봉이며, 짙은 숲. 산이 스스로 품고 있는 이런 풍경과 마주 대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수직의 높이’가 가져다 주는 풍경이다. 까마득한 수직의 높이가 안겨주는 장쾌한 시야. 근육의 힘만으로 오른 높이에 대한 만족감. 바로 그런 것들이다. 청량산의 경우를 말하자면, 첫번째에 가깝다. 해발 870m 청량산은 숨이 턱에 받히듯 올라가는 산이 아니다. ‘이만큼 올라왔다’고 뿌듯해 할 산도 아니다. 그저 고요하게 산책하듯 천천히 오르며 우람한 바위봉우리와 작은 샘, 그리고 그 아래 작은 암자를 천천히 들러보며 꾹꾹 바위길과 흙길을 디뎌가며 오르는 산이다. 높이를 다투거나 종주능선을 질주하는 것은 청량산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 연유는 딱 한 가지. 청량산에는 청아한 절집 청량사와 작은 암자 응진전이 고요히 깃들어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굳이 종교를 따지지 않더라도 청량산의 굵은 암봉과 절집의 기와선이 빚어내는 풍경은 마음에 달라붙듯 인화돼 쉽게 잊히질 않는다. 청량산 도립공원 매표소를 지나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을 달려 입석에서 차를 세우고 밟아가는 산길.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벼랑이 불쑥불쑥 봉우리를 내밀어 절경을 만들어낸다. 까마득한 벼랑사이로 소나무들이 몸을 뒤틀면서 가지를 뻗어내고 있다. 그런 거대한 바위봉우리 발끝 아래에 얌전하게 암자 응진전이 앉아 있다. 응진전을 지키던 운산 스님은 마침 출타한 주지 지현스님 대신 청량사를 지키러 암자를 비웠다. 텃밭에는 방금 전까지 열무밭을 매던 중이었는지 호미 한 자루가 얌전히 놓여져 있다. 주인 없는 암자 주변은 새빨갛게 익은 고추와 노란 호박꽃, 진홍색 봉숭아꽃들이 온통 물들이고 있다. 응진전의 풍경소리가 유난히 높고 청명한 것은, 이 골짜기에 부는 바람이 더없이 청량하기 때문일까. 산모퉁이를 몇 개 더 돌아가면 청량산 최고의 전망대라는 어풍대다. 여기서 내려다보는 청량사는 짙푸른 숲의 한가운데 작은 점을 찍은 듯하다. 초록 잉크가 엎질러진 것처럼 숲이 워낙 짙어 그 안에 깃든 청량사까지 초록으로 물들일 것 같다. 풍경 속에 절집이 들어선 것이 아니라, 절집이 풍경을 만들어낸 모습이다. 청량사를 만나러 가는 길. 여기서부터는 저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지게 마련이다. #청량산, 풍경소리 그윽한 절집에서 차 한잔으로 바람의 길을 묻다. 청량사로 오르는 길은 촘촘히 침목을 깔아놓아 정갈한 느낌이다. 계곡과 멀어졌지만 절 초입부터는 물소리가 따라온다. 속을 파낸 통나무에 물길을 내서 가파른 길을 따라 층층이 세워놓아 낙차를 내며 물이 떨어지도록 했기 때문이다. 물소리의 중간 쯤에는 절집에서 낸 찻집 ‘안심당’이 있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란 서각이 걸려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 차를 청하고, 잘 우려낸 차 한잔을 앞에 둔다. ‘삼각우총’이라든가, 뿔 세개를 가진 소를 묻은 자리에서 났다는 청량사 유리보전 앞의 소나무. 그 소나무를 흘낏 내다보며 운산 스님이 말했다. “양지에서 우람하게 쑥쑥 자라는 나무가 우선 보기에는 튼실해 보이지요. 그런데 그런 나무는 큰 바람을 맞으면 뿌리째 뒤집어져 버립디다.” 스님과 마주앉은 빈 잔에 향그러운 차가 가득 차올랐다. “딱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가지를 내고 잎을 모자란 듯 내는 놈들만이 옹골차게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힘있게 버티는 법이랍니다. 그러자면 어떨 때는 스스로 제 가지를 끊어내기도 해야 하지요.” 찻잔을 물리고 나와 청량사를 둘러본다. 범종루를 지나 계단을 올라 장대한 근육질의 암봉 앞에 서있는 유리보전 앞에 선다. 건너다보는 석탑과 삼각우총 소나무, 건너편 축융봉 산마루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침 물을 담아놓은 돌확에는 붉고 흰 두 송이의 수련까지 화사하게 피어올랐다. 운산 스님은 “번뇌를 다스리면 쓰레기더미 위에서도 마음을 닦는다”고 했지만, 이렇듯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나 마음이 다스려지는 것은 마음이 번잡스러운 탓이겠다. 절집의 아래 쪽에는 퇴계 이황이 숙부로부터 글을 배웠고 만년에 ‘도산십이곡’을 저술했다는 ‘오산당’이 있고, 그 곁에는 이대실(62)씨가 운영하는 또 하나의 찻집 ‘산꾼의 집’이 있다. 아홉가지 약초를 달여서 만들었다는 약차를 무료로 내주는 곳이다. 약차의 맛이야 그다지 특별할 것은 없지만, 오가는 길손을 맞는 마음씀씀이가 고맙다. 이씨는 경북 영양에서 예식장을 크게 하다가 자식들에게 재산을 다 물려주고는 15년전에 홀로 이곳으로 들어왔단다. # 명산이 인물을 낳는 대신 이름난 인물이 명산을 만들어내다. 청량산에는 수많은 인물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명산이 인물을 낳는다’는 옛 사람들의 말은 청량산에서만큼은 ‘이름난 인물이 명산을 만들어낸다’는 말로 바뀌는 게 걸맞다. 먼저 퇴계 이황. 그는 대부분의 삶을 청량산 자락에서 보내며 늘 청량산을 보며 살았다. 퇴계에게 청량산은 학문과 수양의 공간이었다. 나이 오십 중반이던 1555년 겨울을 청량산에서 보낸 그는 아름다운 풍경에 감화돼 스스로의 별호를 ‘청량산인’이라고 짓기도 했다. 벼슬길에 올라서도 그의 귀거래사는 늘 청량산을 향한 것이었다. 만년에도 퇴계는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청량산으로 가서 며칠이고 돌아오지 않았다. 병석에 누워서도 청량산 유람을 다녀온 후학에게 청량산 소식을 듣고는 이튿날 눈을 감았다니…. 청량산 초입에는 청량산을 뭇 사람들에게 숨겨놓고 홀로 즐기려 했던 마음을 담은 퇴계의 ‘청량산가’ 시구절이 적힌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 시에서 퇴계는 청량산의 복숭아꽃이 떨어져 강물을 따라 흘러가면 어부에게 청량의 아름다운 선경을 들킬까 염려했다. 퇴계뿐만이 아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응진전 곁의 바위 아래 샘 총명수를 마시고 수도에 정진했다는 신라의 문장가 최치원이 등장하고, 신라시대 명필 김생이 글씨공부를 했다는 굴도 있다. 또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청량사로 피난왔고, 함께 왔던 노국공주가 응진전에서 기도정진했다는 기록도 있다. 유리보전의 현판글씨도 공민왕의 솜씨로 알려져 있다. 청량산을 찾았다면 짧은 산행의 아쉬움을 퇴계의 발길을 따라가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다. 경북 안동의 도산서원이며 퇴계 종택이야 익히 알려져 있는 곳. 그러나 퇴계의 산책로인 ‘예던길’은 숨은 명소다. ‘예던 길’이란 ‘가던 길’을 뜻하는 우리 옛말이다. 도산면 단천리에서 가송리 농암 이현보 종택까지 이어지는 3km가량의 오솔길이 바로 퇴계의 산책로다. 낙동강 상류를 끼고 도는 이 오솔길은 단천리의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면 그야말로 최고의 전망을 보여준다. 멀리 청량산이 마주보이고 강변으로는 월명담이며, 학소대며, 벽력암 등 기암절벽이 우뚝 솟아 있다. 마치 동강의 뼝대(절벽)를 연상시키는 장대한 협곡의 모습이다. 퇴계가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했던 이 길은 5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아름다운 풍경을 잃지 않고 있지만, 찾는 사람 없이 잡초만 무성한 채 버려져 있어 아쉬움을 더한다. |
산속 절집, 바람엔 벌써 가을이… |
경북 봉화 |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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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나무 물길을 따라 올라가는 청량사 초입의 찻집 안심당.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란 서각이 걸려 있는 이곳에서 차 한잔을 마시면 말그대로 마음이 ‘청량’해진다. |
청량산의 솔숲을 바람이 한가하게 흔들고 지나가자, 청량사 응진전
처마 밑의 풍경이 맑게 댕그랑거렸습니다. 참나리꽃이며 봉선화며 호박꽃이 소담스레 피어 있는 텃밭에 내려진 호미 하나. 밭을 매던 스님은
‘수행중’이란 팻말을 걸어놓고는 침묵 중입니다. 청아한 목탁소리가 바람이 풍경소리를 끌고 간 빈자리를 메웁니다. 통나무를 파내서 만든 물길을
따라 물소리도 보태집니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 꽃이 필까 잎이 질까 / 아무도 모르는 세계의 저쪽 / 아득한 / 어느 먼 나라의 눈 소식이라도 들릴까. /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 저녁연기 가늘게 피어오르는 / 청량의 산사에 밤이 올까 / 창문에 그림자 / 고요히 어른거릴까.’ 경북 봉화 청량산의 울창하고 청청한 숲속에 가만히 들어앉은 절집, 청량사. 그 절집에는 ‘안심당’이란 찻집이 하나 있습니다. 찻집 문에는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란 서각이 걸려 있습니다. 글을 쓴 주지 지현 스님 대신 절집을 지키던 운산 스님은 “어떤 바람이, 또 어떤 소리를 만나는 것이냐”고 했더니 “애써서 풀려 하지 말라”며 “읽다 보면 그저 고요하고 평온하게 석양이 내리는, 그런 순간이 느껴지지 않는가”하고 물었습니다. 여름이 물러가고 있습니다. 끝없이 계속될 것 같던 가마솥 같은 무더위도 이제 마지막 불을 지피고는 사그라질 것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선뜻선뜻한 가을의 기운 속에서 이스케이프 팀은 이름 그대로 ‘청량’한 산인 청량산엘 다녀왔습니다. 아직까지 초록의 기운이 성성한 늦여름의 산에서 숲을 만나고, 물을 만나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성급한 가을의 기운을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조용히 초의차를 따라주던 운산 스님에게 “청량산의 맑은 기운에 힘을 얻었다”고 했더니 “마음이 맑으면 쓰레기 더미 위에 앉아도 마음을 씻는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또 도회지에서의 번잡한 삶과 번뇌를 말했더니 “세속의 더러움쯤이야 곱게 씹어 삼켜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스님은 툭툭 답을 던지지만 그게 말처럼 쉬울 턱이 없지요. 우리 같은 범인들이야 저마다 최고 속도로 달려가는 저잣거리에서는 마음이 황폐해지는 법. 어쩌다 시간을 내서 풍경소리와 물소리가 가득한 산중에서의 차 한잔으로 마음을 씻을 도리밖에요. 이제 하루하루 가을은 가까이 다가오고, 다가와서는 하루하루 또 깊어질 것입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면 청량산에 올라 안심당에서 두 손으로 따스한 찻잔을 쥐고 곰곰이 생각해 보시지요. ‘소리를 만나는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고 또 어디로 불어가는지…. 시간이 좀 더 있다면 청량산 기슭으로 내려가 퇴계 선생이 즐겨 걸었다던 가송마을의 강변 오솔길을 천천히 걸어보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이 길은 ‘이동’이 아니라 ‘생각’이 목적인 길이랍니다. 그 길 위에서 ‘곱게 씹어 삼켜야 할 것’들을 생각해 보시면 또 어떨까요. |
<여행
메모> 중앙고속道→풍기IC 봉성 숯불돼지 유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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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가는 길 = 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풍기IC에서 빠져나온다. 풍기에서 5번 국도를 타고 영주방면으로 달리다가 봉화방면으로 난 36번 국도로 갈아탄다. 춘양을 지나면 안동으로
가는 35번 국도로 우회전해서 낙동강 줄기를 따라가면 청량산까지 길이 이어진다. 청량산도립공원 안에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청량사까지는 도로가 닦여 있기는 하지만, 차량출입이 통제되므로 걸어서 올라야 한다. 육각정자에서 청량사까지 곧바로 치고 올라가는 길은 운치도 떨어지고 가팔라서, 입석에서 올라가는 등산로를 택하는 편이 여러모로 낫다. 정상을 등반할 생각이 아니라면 청량사 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입석까지 가서 응진전, 청량사를 보고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오는 게 요령. 본격적인 등산을 하려면 육각정자→청량사→의상봉→보살봉→응진전→육각정자로 이어진 코스(4시간 20분)나 통제소→의상봉 →보살봉→응진전 →청량사→육각정자로 내려오는 코스(4시간)를 이용하면 된다. 청량산 도립공원 054-672-4994 청량사 054-672-1446 퇴계오솔길 가는 길 = 봉화에서 안동방향으로 난 35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퇴계종택 방향으로 좌회전한 뒤 이육사기념관 표지판을 보고 따라간다. 기념관을 지나 단천리 쪽으로 방향을 잡고 가다가 ‘백운지’라고 쓰인 작은 기둥팻말을 보고 좌회전한다. 백운지교 다리 앞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어야 하는데, 오솔길 가는 길을 황토색으로 포장해 놓아 구분하기 쉽다. 이 길을 따라가면 군데군데 퇴계의 시를 써놓은 돌비석들이 세워져 있다.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전망대와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여기서부터 언덕을 내려가 가송마을까지 이어지는 3㎞가 바로 퇴계가 걷던 오솔길이다. 잘 곳과 먹을 것 = 청량산 도립공원 입구에는 최근 깨끗한 민박집들이 새로 들어섰다. 말이 민박이지, 아예 숙박을 위해 지어놓은 건물이라 모텔이나 여관과 흡사하다. TV와 에어컨이 갖춰진 깔끔한 방이 1박에 3만~4만원 가량. 민박집들은 대부분 식당을 겸업한다. 강변민박 054-673-6745 쉼터민박 054-673-2654 청량산민박 054-673-2560 맛집은 봉성면 소재지의 숯불돼지구이집이 유명하다. 돼지고기를 석쇠에 올려 투박하게 숯불에 구워내는데, 보통 놀러가서 야외에서 돼지고기를 구워먹는 것과 비슷한 맛이다. 구운 돼지고기를 소나무 가지 위에 얹어서 내오는 오시오식당(054-672-9012)이 현지주민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하다. 솔잎 위에 고기를 얹었을 뿐인데 솔향이 제법 진하게 밴다. 두리봉식당(054-672-9037) 상봉식당(054-672-9783) 등 여덟 집이 몰려 있다. 오는 26, 27일에는 봉성장터에서 ‘봉성돼지숯불요리축제’가 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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