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 2015년 6월 24일 ~ 25일

장소 : 거창 수승대 그리고 월악산 미륵사지와 충주 탄금대

 

 " 그렇타면 왜 화를 내시는 거지요?

잘 다녀왔으면 그것으로 노 프라블럼(아무 문제없어) 아닌가요?

이미 지난간 일인데 그런 것 때문에 화를 낸다면 어리석은것 아닌가요?

"모든 것은 당신 자신의 업이에요. 이미 수천년 전 부터 정해져 있는걸 내가 어쩌란 말인가요? 어쨌든 현실의 결과를 받아 들여야지요"

----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중 몇줄을 소개 해 보았네요.

 

수승대란? (옮긴길)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였고 조선 때는 안의현에 속해 있다가 일제 때 행정구역 개편으로 거창군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승대는 삼국시대 때 백제와 신라가 대립할 무렵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사신을 전별하든 곳으로 처음에는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하였다 해서

근심 수(愁), 보낼 송(送)자를 써서 수송대(愁送臺)라 하였다.

수송대라 함은 속세의 근심 걱정을 잊을 만큼 승경이 빼어난 곳이란 뜻으로 불교의 이름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 후 조선 중종 때 요수신권(樂水 愼權)선생이 은거하면서 구연서당(龜淵書堂)을 이곳에 건립하고 제자들을 양성하였고 대의 모양이 거북과 같다하여 

암구대(岩龜臺)라 하고 경내를 구연동(龜淵洞)이라 하였다.

지금의 이름은 1543년에 퇴계 이황(退溪 李滉)선생이 안의현 삼동을 유람차 왔다가 마리면 영승리에 머물던 중 그 내력을 듣고 급한 정무로 환정하면서

이곳에 오지는 못하고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다며 음이 같은 수승대(搜勝臺)라 고칠 것을 권하는 사율시(四律詩)를 보내니

요수 신권선생이 대의 면에다 새김에서 비롯되었다.

경내에는 구연서원(龜淵書院) 사우(祠宇) 내삼문(內三門) 관수루(觀水樓) 전사청(典祠廳) 요수정(樂水亭) 함양제(涵養齊) 정려(旌閭)

산고수장비(山高水長碑)와 유적비(遺蹟碑) 암구대(岩龜臺) 등이 있는데 이는 유림과 거창신씨 요수종중에서 공동 관리하고 있으며,

솔숲과 물과 바위가 어울려 경치가 빼어나고 또한 자고암과 주변에는 고란초를 비롯한 희귀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점심시간 이용해서 수승대를 잠시 둘러본다.

 

 

 

 

 

 

 

 

 

 

 

 

 

 

 

 

 

 거창 출장 업무를 끝내고 다음날 출장지 충주로 향하는 길 하룻밤 유할 수안보에 여정을 풀고 잠시 미륵부처님 찾아 108배를 올리고 잠시 마음을 다 잡는다.

 

 

 

 

 다음날 출장길 아침 시간이 좀 여유가 있어 탄금대를 찾았다. 오랬만에 주지 스님과 차 한잔나누고 잠시 쉬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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