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의 보고 굴업도, 자연유산 넘어 천연기념물로!
[포토] 보는 것보다 걷는 게 더 좋은 굴업도 탐방
11.11.19 17:34 ㅣ최종 업데이트 11.11.19 17:35 이정민 (min93)

자연생태의 보고 굴업도가 골프장 개발이냐, 친환경 관광단지 조성이냐를 놓고 옹진군 주민과 인천 환경단체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최근 인천작가회의 등 문화예술인들과 4대 종단 종교인들이 직접 기행에 나서며 굴업도 지키기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지난 11월 17일과 18일 1박 2일에 걸쳐 진행된 인천불교총연합회-한국기독교장로회-생명평화기독교행동 단체의 굴업도 기행에 함께하여 주민들 의견도 듣고 현장을 둘러봤다. 천혜의 비경과 생태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굴업도 곳곳을 상, 하로 나뉘어 사진 속에 담아보려 한다.(기자 주)

 

  
연평산 정상에서 바라본 굴업도 전경
 

보는 것 보다 걷는 게 더 좋은 천혜의 섬, 굴업도

 

17일 오전 9시 30분. 시간에 맞춰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 모인 목사님과 스님들이 부푼 설렘을 안고 배에 올랐다. 2년 전에도 한 번 함께 가봤던 굴업도였기에 마치 고향에 가는 것처럼 혹은 엄마를 만나러 가는 것처럼 그들은 마냥 즐거워했다. 

 

  
굴업도 중간 경유지인 덕적도에서 만난 풍경
ⓒ 이정민
굴업도

1박 2일로 가는 여행이었지만 준비물은 그다지 무겁지 않았다. 칫솔과 외투 한 벌, 그리고 손전등 정도. 이유인즉 굴업도 민박을 직접 운영하면서 고향을 지키고 있는 굴업리 이장 서인수씨가 모든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기 때문이었다.

 

  
바다는 말이 없다
ⓒ 이정민
굴업도

인천 불교 대표로 참석했던 보련스님(경운사 주지)은 2년 전 추억을 떠올리며, 서인수씨 부인이며 '굴업도 민박' 안주인이기도 한 최인숙씨의 음식솜씨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러며 그곳에 한 번 갔던 사람은 그 풍부한 자연 의 맛에 매료되어 한 번은 꼭 다시 가게 된다고 전해준다.

 

굴업도로 가는 물때는 하루에 한 번, 홀수 날과 짝수 날이 있다. 들어가는 날이 홀수 날이면 덕적도를 거쳐 바로 굴업도로 갈 수 있지만 짝수 날이 걸리면 중간에 문갑도, 백아도, 울도, 지도 등을 거쳐 들어간다. 하지만 나오는 길은 반대가 되기 때문에 어차피 시간 거리는 똑같다. 그리고 매주 들어가는 날이 할인되는 시기가 있어 미리 알아보고 가면 인천시민 할인까지 포함해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여행할 수 있다.

 

  
이 여행을 주선했던 윤인중 목사는 가는 배 안에서 내내 기타를 놓지 않았다
ⓒ 이정민
굴업도

연안여객터미널을 떠나 중간 경유지인 덕적도 가는 길이 비교적 파고가 낮아 멀미에 민감한 여행객도 무난히 뱃길에 몸을 맡길 수 있어 좋았다. 잠시 덕적도에 내려 휴식을 취하고 나자 바로 굴업도 가는 배가 들어왔다. 이때 시각은 대략 오전 11시. 이날은 물때가 홀수 날이라 바로 굴업도로 간다고 선장이 전해준다.

 

  
밀물과 썰물의 견고함을 이겨내고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우리를 반겼던 황금 빛 해안가 풍경
ⓒ 이정민
굴업도

검은 하늘과 요동치는 파도를 뒤로하고 한 참을 달린 배는 이내 굴업도의 백사장과 먼저 시선을 맞춘다. 섬의 지형이 물 위에 구부리고 떠 있는 오리의 모양과 비슷하다고 해서 굴압도로 불렸던 굴업도는 그 유래만큼이나 유연한 능선 지형이 감탄을 자아냈다.

 

전 이장님과 원주민 몇 명 남아

가시라와 골뱅이를 무쳐 밥상을 차려주며

시름 달래는 섬

도회지 사람들만 조심조심 찾아와

마음 다독 거리고 가는 섬

터주대감 먹구렁이가 전설처럼 남아있는 섬

남아있는 사람들과 살 부비며

함께 지켜주고 싶은 섬

굴업도                         - 시인 조혜영의 '굴업도' 중에서                  

 

  
인근 바닷가에서 혹은 밭에서 직접 채취하고 키운 무공해 음식들의 향연
ⓒ 이정민
굴업도 민박

일행들과 정오께 도착한 굴업도 민박집에 짐을 풀자마자 점심을 먹었다. 굴업도에서 태어나며 고향을 지키고 있다는 민박집 안주인 최인숙씨의 입담과 손님 맞는 정성을 보고 있노라니 섬 주민 답지 않은 세련미와 섬세함이 묻어나 보인다. 인근 바닷가에서 직접 채취해서 만들었다는 가시리, 생굴, 게, 김 그리고 직접 키워 만든 총각김치까지 모든 반찬이 밥도둑 그 자체였다. 스님 하는 말씀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음에 또 한 번 감동한다.

 

"매번 오는 도회지 손님 맞이 하느라 너무 힘드실 것 같아요."

"괜찮아요(웃음). 일이 손에 익어서요. 오히려 조그만 섬에 이렇게 찾아주시니 저희가 정말 고맙지요"

"비록 몇 세대 밖에 살지 않고 주민도 별로 없지만 그래도 저만이라도 지켜야죠. 제 고향인데요. 일부 주민들 중에는 개발해서 돈도 많이 받고 나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저는 굴업도가 생태관광단지로 조성돼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는 장소가 되길 바라고 있어요."

"알음알음 우리가 뭘 원하고 있는지 전해주신다면 일방적인 기업의 난개발 횡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보네요. 그것이 굴업도에 나고 자란 주민의 마음입니다."

 

 

 

  
굴업리 이장 서인수씨의 웃음은 굴업도 그 자체였다.
ⓒ 이정민
굴업도 민박

굴업도 민박을 운영하며 이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서인수씨는 이미 많은 예술인들과 환경단체 관계자들과 친분이 두터워보였다. 그는 요즘 민박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굴업도 개발 반대 서명을 받고 있다. 본인에게는 전혀 득이 되지 않고 오히려 주민들 간에 원성만 듣는 입장인데도, 서 씨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그야말로 굴업도 주인 답다.

 

점심을 먹고 본격적인 굴업도 탐방에 들어갔다. 기독교 팀은 먼저 연평산과 무기미 해변 방향을, 그리고 불교 팀은 황금 빛 백사장이 내려다보이는 개머리초지 남쪽 산을 올라가기로 정했다.

 

  
개머리초지 정상에서 바라 본 바다 풍경. 멀리 어슴프레 보이는 삼형제 봉이 애처롭다
ⓒ 이정민
굴업도

모래 언덕이 산 중턱까지 올라와있는 모습에 신기함을 감추지 못하고 오른 개머리초지 정상은 그야말로 갈대밭과 형형색색의 꽃들로 분지를 형성했다. 산 주변으로 사방이 모두 바다니 바람의 세기가 무척이나 견고했다. 그러나 능선을 따라 주변부로 들어가자 이내 바람은 멈추었고,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역사를 거슬러 올라온 것 같은 고요하고 적막한 비경에 그저 가슴만 쓸어 내렸다.

 

이곳이 과거 개항의 압력에 밀려 각종 무역선들의 중간 경유지로 이용했다는 보고서가 말해주듯, 능선 주변부 곳곳엔 돌로 만들었던 우물 터와 기단들이 놓여 있었다. 우물 터 안에는 땅에서 올라온 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 심지어 미나리가 자라고 있을 정도였다.

 

  
굴업도를 지켜주소서!
ⓒ 이정민
굴업도

개머리초지는 가도 가도 끝이 없을 정도로 산 넘어 산이라는 명칭이 딱 어울릴 정도다. 그만큼 사람 때가 전혀 묻지 않은 자연그대로의 모습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었으며, 그 자태와 위용은 감히 인간의 도전의식이 용납할 수 없는 숭고함마저 가득 차 있었다.

 

잠시 그렇게 돌아본 개머리초지에서 백사장으로 내려오다 보니 벌써 해가 저물고 있다. 잠시 숨을 돌리고 이어 개머리초지와 마주하고 있는 작은 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사각사각''철썩철썩''쉬이이'하는 소리가 가는 내내 귀를 즐겁게 해준다.

 

  
끝없이 펼쳐진 개머리초지 정상 풍경
ⓒ 이정민
굴업도

오후4시께 도착한 야트막한 산 주변엔 강낭콩 만한 크기의 염소 똥 무더기가 곳곳에 보였다. 듣기로는 이 굴업도 산 곳곳에 사슴과 염소가 가득하다고 했는데 가는 내내 똥만 봤지 염소나 사슴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산을 넘어 또 다른 바다가 발길을 재촉했고, 바다위에 등대처럼 서 있는 연평산을 마주하고 17일 일정을 마무리했다. 아쉬운 것은 그토록 아름답다는 일몰의 장관은 날씨 탓에 마주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진 굴업도  

 

  
굴업도는 굴업도다
ⓒ 이정민
굴업도

덕적군도에는 변경의 비참이 들어있다

목멱산이 되기 위해

황해를 건너오다

그만 먼저 당도한 산이

목멱산이 되었다는 이유로

화가 난 마귀 할멈

주먹으로 산을 내리쳐

산산이 군도가 되었다는

덕적군도의 유래에는 비극이 서려있다        - 시인 이세기의 '굴업도' 중에서)

 

500년 역사를 품은 천혜의 섬  굴업도는 과거 무인도로 전해졌으며 대형 어종인 민어가 많아 어업에 종사하는 어선이 많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과거 충신들의 유배지로 전해진 굴업도는 유배 충신들의 처절하고 참혹한 광경에 파도 위에 날아다니는 갈매기와 백로 등의 뜻 없는 새들도 운다고 하여 구로읍도라 불렸다. 하지만 역사문헌에는 아직 지명이 남아 있는 것은 없다.

 

 

 

 

 

 

 

 

 

  
산신 할매의 정령이시여, 굴업도를 지켜주소서!
ⓒ 이정민
굴업도

굴업도 해변을 걷다 보면 선사시대 토기 같은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현재에서 쓰이지 않고 있는 빗살무늬 토기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인천작가회의가 최근에 발간한 굴업도 생태 기행 작품집에 따르면, 굴업도에는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산 흔적이 역력하다. 이것은 강화 동막리와 함께 연평도, 오이도, 소야도 등에서 발견된 일너무늬(점무늬) 토기조각이 굴업도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개머리초지에서 내려다 본 풍경
ⓒ 이정민
굴업도

굴업도에는 또한 이름만으로 희한한 생태식물들이 장관을 연출한다. 갯채송화, 갯메꽃, 뗏부르나무, 금방망이꽃, 보라색엉겅퀴, 수크령, 은빛 억새, 소사나무 군락 등등. 이밖에도 왕은점표범나비, 송골매, 검은머리물떼새, 먹구렁이, 두루미천남성, 황새, 검은 물새, 덕물산 왕거미 등의 천연기념물이 굴업도의 주인 노릇을 하며 오랜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연평산으로 향하는 해안가 풍경
ⓒ 이정민
굴업도

시인 천금순씨는 말한다. "그대 그리움이거든 굴업도로 가라"고.

 

온갖 생명들이 살아 숨 쉬며 나무늘보처럼 아주 느린 삶 속에의 여유와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있는 굴업도의 천연자원들은 여행객들이 단순히 만끽하는 자연유산을 넘어 인천 시민들의 천연기념물로 긴 역사만큼 기억되어야 할 이유이다.

 

  
왼쪽으로 낙타 머리 형상이 보인다. 마치 낙타가 바짝 엎드려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 이정민
굴업도
"굴업도, 욕망 배설구로 내버려둘 수 없다"
[포토] 그리움이 일거든 굴업도로 가야 한다
11.11.24 10:12 ㅣ최종 업데이트 11.11.24 10:14 이정민 (min93)

자연생태의 보고 굴업도가 골프장 개발이냐, 친환경 관광단지 조성이냐를 놓고 옹진군 주민과 인천 환경단체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최근 인천작가회의 등 문화예술인들과 4대 종단 종교인들이 직접 기행에 나서며 굴업도 지키기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지난 11월 17일과 18일 1박 2일에 걸쳐 진행된 인천불교총연합회-한국기독교장로회-생명평화기독교행동 단체의 굴업도 기행에 함께하여 주민들 의견도 듣고 현장을 둘러봤다. 천혜의 비경과 생태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굴업도 곳곳을 상, 하로 나누어 사진 속에 담아보려 한다. - 기자 주

 

  
연평산 정상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
ⓒ 이정민
굴업도

 

 

17일 오후, 짧게 둘러 본 풍경만으로도 굴업도는 정말 매력적인 섬이었다. 오후 6시께 끝난 여정을 마치고 섬주민인 이장님 부부와 오랜 대화시간을 가졌다. 그것도 점심만큼이나 맛나고 풍성한 저녁식사를 마주하고서.

 

최근 한 대기업이 굴업도 땅을 98%가량 매입해 골프장과 레저타운으로 개발을 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에 지역 문화예술단체와 종교단체가 나서서 보호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옹진군 주민들의 찬성 논리도 만만치 않아 향후 인천시 정책에 관심이 주목되고 있는 상황이다.

 

  
만화가 김광성씨가 현장에서 직접 그린 저녁식사 풍경
ⓒ 이정민
굴업도

 

 

"찬성 측 주민들 입장도 존중해주어야 하지만 이 기업의 개발계획은 이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굴업도에 요트장, 호텔, 콘도, 골프장을 건설해 해양 리조트로 만들겠다는 겁니다. 특히 1%를 위한 골프장 계획은 환경파괴가 불가피할 것이며 50만 평이 채 되지 않는 섬에 30만 평을 몽땅 차지해 결국 섬 전체의 생태자원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 서인수 이장

 

'1급 야생 동식물 서식지' 굴업도

 

  
연평산 가는 길목에 있는 해안가 풍경
ⓒ 이정민
굴업도

 

 

굴업도라는 섬 명칭은 섬의 형태가 사람이 구부리고 엎드려서 일하는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지어졌다고 하는데, 이는 대동여지도에도 표기가 되어 있다. 또 이곳에는 국제적 멸종 위기종이며, 천연기념물 323호이자 환경부지정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1급인 매가 매년 5~6월 번식기에 15마리 관찰되었다. 이밖에도 황구렁이, 먹구렁이가 유유히 섬을 누비고 있으며, 애기뿔소똥구리가 개머리초지에서 소똥 대신 염소와 사슴똥을 굴리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굴업도는 아열대성 식물과 아한대성 식물이 공존하고 있는 특이한 식물군락을 갖고 있다. 이는 굴업도 인근의 수심이 80~100m로 일반적 서해 수심인 20~40m에 비해 깊고 바닷물 온도가 주변해역에 비해 낮아 해류와 조류의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은 주변에 독특한 해식대를 이루었다.

 

 

 

 

 

  
연평산 정상에서 바라 본 하늘 풍경
ⓒ 이정민
굴업도

 

 

용화암으로 형성된 굴업도는 화산 폭발 후 그 재가 날아와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굴업도의 역사는 덕적군도의 역사와 함께하는데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와 같이 하며 고려사 권24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굴업도, 태풍과 해일에 모든 걸 잃다

 

  
고래 새끼로 보이는 생명체 시체가 해안가까지 밀려와 있다
ⓒ 이정민
굴업도

 

 

최근 인천작가회의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굴업도는 이미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효종3년인 1652년에 덕적도에 백성을 모아 둔영(屯營)을 설치하고 만호(萬戶)를 두어 강화의 문호로 삼을 것을 명한 이후 사람들이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또한 굴업도는 연중 새우잡이를 하던 새우 파시(波市)와 민어 파시가 유명했다. 책 <옹진군향리지>에 따르면, 덕적군도 서쪽에 있는 굴업도와 백아도, 그리고 남쪽에 있는 울도, 방우리섬 부근은 예로부터 유명한 어장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전하고 있다.

 

  
감동 그 자체의 굴업도 바다 풍경
ⓒ 이정민
굴업도

 

 

굴업도의 민어 어장은 굴업도 북동쪽 청골과 굴업도 개머리 앞 바다, 덕물산 앞의 동뿌리 어장, 굴업도와 문갑도 사이의 굴업굴, 백아도와 굴업도 사이의 민어탄 등이 주요 어장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똥섬 앞의 준치여에서도 민어가 많이 잡혔다고 전한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들끓고 어장이 풍부했던 굴업도는 1923년 여름에 엄청난 폭풍우와 해일을 만나 시련을 겪는다. 굴업도 전체를 휩쓸고 간 태풍은 선박파괴 200여 척, 130호의 가옥유실 등 그야말로 아비규환, 아수라 지옥으로 변해 모든 것을 사라지게 했다. 그 이후로 사람의 흔적을 잃어 버렸던 것이다.

 

  
넓은 개머리초지에 올라 야영을 하러 올라가는 청년들의 모습
ⓒ 이정민
굴업도

 

 

 

 

"하룻밤 사이 천에 가까운 생명과 십만이 넘는 재산을 집어삼켰다는 굴업도는…(중략) 난데없는 폭풍에 섞이어 뿌리는 해우로 인하야 험악한 바람과 흉흉한 파도에 휩쓸리어 인가는 바람에 날리고 어선은 파도에 잠겼으며 사람은 용왕의 밥이 되었고 탔던 배는 산산이 깨어졌으며 사람 살리라고 부르짖으며 무정한 물결에 떠내려가니…" (당시 보도 기사 중에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섬

 

  
아름다운 숲 대상의 전경
ⓒ 이정민
굴업도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사라져버릴 것 같았던 굴업도는 이내 그 자리를 되찾으며 1930년대 모두 15가구가 살았다고 전한다. 이때 원주민은 6가구였으며, 나머지 9가구는 피난민이었다. 어선도 소형어선 두 척뿐이었고, 소를 방목하기도 했다.

 

이후 일제 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소 방목과 땅콩농사가 주를 이루었으며, 넓은 초지로 인해 생태계가 안정되면서 관광지로 명성을 되찾았다. 이를 바탕으로 2009년엔 산림청과 생명의 숲이 주최한 '제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대상을 수상했다. 또 같은해 11월엔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주관한 '2009, 이곳만은 꼭 지키자! 환경부장관'상을 수상했다.

 

  
바다, 산 그리고 굴업도
ⓒ 이정민
굴업도

 

 

"굴업도, 아니 구로읍도는 고래로 바다가 인간에게 선사한 민어와 조기, 새우를 함께 나누는 황해바다의 노다지 섬이었다.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져 온갖 희망과 고통, 애환을 함께 한 역사의 섬이 바로 굴업도-구로읍도였던 것이다. 그런 굴업도를 가진 자들의 욕망의 배설구로 내버려둘 수는 없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모욕이자 우리 선조들이 보듬어왔던 문화에 대한 야만적 테러에 다름 아니다."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이희환 교수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한 대기업의 굴업도 개발논리를 신랄히 비판했다. 그는 굴업도 개발논란은 바로 자본의 독점논리가 빚어낸 천박한 관광개발논리라며 당장 철회하고, 인천시는 적극적으로 보존, 관리하는 도서정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화가 김광성씨가 연평상 정상에 올라 스케치를 하고 있는 모습
ⓒ 이정민
굴업도

 

 

또한 이세기 작가는 굴업도 운명은 인친 시민의 운명이라며 굴업도를 지키는 것은 곧 황해바다 역사를 지키는 것과 같다고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알고 보면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으로 원시 자연이 파괴되는 것도 문제지만 인간의 때가 오지 섬까지 손길이 뻗치는 현실은 문명의 또 다른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돈이면 다 된다는 속물성의 투영과 인간만을 위한 이기적인 만용이 빚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자연유산을 오롯이 지키려는 세계적인 추세에도 역행하는 일이다."

 

들어보라, 사람들아! 나는 굴업도다!

 

  
만화가 김광성씨가 그린 굴업도는 우리의 보배 그림.
ⓒ 이정민
김광성

 

 

이제 잠시 들렀던 굴업도 여정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이틑날 아침 날씨가 좋지 않아 일출은 보지 못하였지만 연평산으로 가는 해변가를 거닐며 보았던 장엄한 자연의 숭고미 앞에서 인간이라는 나란 존재가 한없이 작아 보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가파르게 형성된 연평산 정상을 오르는 기분은 가보지 못한 사람은 누릴 수 없는 오묘함과 신비스러움 그 자체였다. 바다 저 끝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그대로 포용하면서 산속 깊은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올라가는 산행이란 그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굴업도 지키기 1박 2일 여행에 함꼐 했던 기독교, 불교 신도들의 단체 사진
ⓒ 이정민
굴업도

 

 

연평산 정상에서 굴업도 전경을 바라보는 그 전율은 이제 조금씩 사라져 가겠지만, 그곳에서 그 자연과 함께했던 기억은 아마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리라.

 

사람을 품고, 자연을 품고, 역사를 품고, 생태자원을 품은 굴업도는 이제 인천시민 모두를 품고 그곳에서 영원히 함께 하여야 할 소중한 우리의 고향임을 되새겨 본다. 

 

들어보라, 사람들아!

나는 구로읍도다.

사람들아! 여기에 역사가 있다.

사람들아! 나는 황해바다 어부들의 영혼이다.

사람들아! 나는 어스레기, 민어다.

사람들아! 굴업도의 운명이 곧 사람의 운명이려니.

오소서 오셔서 지키소서!

천년만년 터전을 지켜주소서! (이희환 시) 

 

  
연평상 정상에서 바라 본 굴업도 풍경 모습

 

http://www.kefship.com/ 고려고속훼리 연안부두<-> 덕적도 운항 쾌속선(1시간 10분 소요) <-- 인터넷 왕복 3일 전까지 예약시 / 연안부두 출항 09:30 덕적도 귀항 16:00

 

http://www.daebuhw.com/ 대부해운 연안부두<-> 덕적도 운항 차도선(2시간 40분 소요) <-- 인터넷 왕복 3일 전까지 예약시 / 10월 4일 이후 연안부두 출항 08:00 덕적도 귀항 14:30

http://www.hlhaewoon.co.kr/incheon/sub3/menu1.html (주)에이치엘 해운 덕적도<-> 굴업도 운항 (홀수일 1시간 10분, 짝수일 2시간 40분 소요) 인천시민만 50% 왕복 5,900원 

※ 새로 취항하는 차도선 '나래호'는 2노트 더 빠르고 차량 9대 싣고 40명 더 승선합니다.

 

굴업도 민박 前 이장 서인수 032)832-7100 민박요금은 동일 4인 기준 50,000원

식사 6,000원

 

http://www.badatime.com/139.html 굴업도 물때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