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 2005년 10월 15일 ~ 16일
누구와 : 나,산찾사,별땅이,강건너 덕배,재넘이 옆지기 그리고 가족...
여행 떠난 곳 : 부산 광안리 옆 이기대.
부산땅으로 가족 여행인지 산행인지를 떠나면서 부산 친구를 만나게 된 동기를 우선 적어
본다. 서울 국립중앙 박물관 현장으로 발령을 받고 어언 8년의 세월 오는 10월 28일 개관을
앞두고 하루 하루가 무척이나 바쁘게 돌아간다...
부산으로 산행가는 날 현장에 5,000여명의 디카동호회 회원들 방문으로 전직원 출근
하지만 부산은 가야하기에 이리 저리 머리 굴려 현장을 잊고 대전으로 출발을 한다.
본론도 야기하기 전에 갑자기 삼천포로 이야기 방향이 흘러 갑니다.
대전에서 서울 현장으로 발령을 받고 주말 부부를 하면서 일주일에 한두번은 꼭
열차를 이용해 대전에서 서울을 오고 가는데 벌써 4년전 쯤 서울에서 대전으로 내려오는
새마을호 열차 옆 자리에 앉은사람 대전이 가까워 올때까지 신문만 본다..내도 그런가 보다
하고 닭보듯 내도 책만 보다가 대전이 가까워 오면서 어데까지 가냐고 물으니 부산까지
간다고 대답을 한다.
그리 몇마디 주고 받는데 휴대폰 밧데리가 다 되어서 그러는데 집에 전화 한다고 전화기좀
빌려달라네요 그래서 빌려주고 명함 주고 받으면서 내는 대전에서 내렸습니다.
그 명함으로 인테넷에 들어가보니 무슨 사업을 하는 사람인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메일을 보내고 답이 오고 그리 인테넷으로 친구가 되었습니다.
부부의 나이가 같고 애들 둘 나이도 같고 그래서 좀더 쉽게 친해졌고 내가 군 생활을
부산에서 한 것도 친해지는 동기 부여가 되었습니다.
부산 친구가 서울 출장이 잦아지면서 서울에서 쇠주 한잔을 하면서 첫 만남부터
말을 트고 지내게 되고 내 숙소에서도 가끔은 유하게 되고 서울 출장 끝내고 부산 가는길
대전 우리집에 들려서 저녁먹고 내도 부산 친구집에 놀러가고 그리 급격히 친해지게
되었지요.
하루라도 전화를 하지 않으면 궁금하다 할까 아니면 밥을 한끼 먹지 않은 그런 느낌으로
멀리 떨어져서 살기에 더 그리워하지 않았나 봅니다.
내가 산을 다니니까 휴일날 그 친구도 집 근처 산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산행 길이를
늘려가면서 산행에 필요한 옷도 하나씩 장만을 하더라구요...
언제인가 부부가 대전을 왔기에 계룡산을 찾아 큰배재로 해서 자연능선타고 은선폭포로
하산 하는데 친구 옆지기 몇번을 울었나 모릅니다..
그리고 친구와 둘이서 월악산으로 또 부부끼리 김천 직지사 황악산 그리 시작된 산행
어느날 다음 카페에 뫼오름이들을 만들고 부산 친구들 몇몇이서 정기산행이다 번개 산행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기산행때 가끔 참석하고 휴가때라던지 1월 1일 일출 보러갈때
그때마다 부산으로 가게 되어서 그렇게 친분이 쌓인 부산 친구와 산우님들입니다.
볼때마다 정이가는 친구들!!!
대전에서 몇몇 산우들이 부산을 찾는다 하니 몇주전 부터
잠자리며 먹는것이며 걱정이 된다고 계속해서 전화가 걸려 옵니다.
민박을하냐? 여관을 잡냐? 아니면 친구집에서 자냐?
내는 괜찮타 하는데 부산 친구는 부담으로 다가 오나 봅니다.
전화 통화가 잦아지면서 대충 계획이 잡히고 대전에서 부산으로 떠납니다.
별땅이님 일요일 피치 못할 약속이 있어 부부가 먼저 열차로 부산으로 향합니다.
부산친구에게 부산역부터 가이드좀 부탁을 합니다...토요일 가능한 업무 빨리
끝내고 그렇게 하마 답을 들으니 안심이 됩니다.
거침없이 찾아간 부산 이기대 ....맞춘듯이 이기대 신혼여행을 끝내고 내려오는
설래임의 별땅이 부부님을 차를 주차하면서 딱 마주 합니다. 어찌 그리 정확한지
약속이 되어 있다한들 그렇게 마주 하기가 쉽겠습니까?
해질 무렵 순식간에 어둠이 찾아오면서 광안대교의 불빛이 하나 둘 훤하게 밝혀지더니
해운대의 빌딩 숲 야경도 불을 훤하게 비추니 바다물에 반사되는 조명은 더욱더 황홀감으로
빠져갑니다.
나머지 산행 느낌은 다른 님들의 산행기로 대신하고 지는 여기 까지만 산행기를 적습니다.
함께해서 즐거웠고 부산 산우님들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
추억의 한 페이지가 더 늘어나지 않았나 지는 그런 느낌 이었습니다.
헹여 가족끼리 오붓한 여행을 기대했는데 그러하지 못한 점은 다음 가족 산행때 만끽하시라
믿습니다.
돌아오는 길 좀은 긴장도 하고 짜증도 낳지만 그래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전혀 생소한
경험을 했다는 것은 두고 두고 추억이 되지 않을까 그리 생각합니다.
모두가 행복한 만큼 우리 살아감이 더 큰 행복감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면서....
▼.이기대에서 바라본 광안대교 및 해운대 야경.



▼.음력 열사흘 달빛에 반사되는 은빛 바다~~


▼.사라져서 보이지 않기에 찾아보니 여기서 무얼 하시는지?
우리의 시인 별님!!!

제목 : 술 익는
마을.
술잔이 머리 위를 돌아 술잔이 깨지면 우리는 웃음꺼리. 얼굴이 익으면
술잔은 가슴 구석진 저 쪽 비키어 있오. 잔은 쓸어져 발버둥치고 웃음은 눈물보다 더한 정이 있오. 살을 부비고 산 것도
아닌데 술 잔을 나눔은.. 가끔은 가끔은 .... 술잔이 머리 위를 돌아 내 자리를 만들고 있오. 가슴이 있다면
내밀고 싶오. 손이 하나이건 두 개이건 아무런 문제가 없오. 얼굴은 하나이니... 발이 두 개라고 도망을 잘하오. 외
발이라고 도망을 못하오. 술 잔이 쓸어져 운다고 운다고 우리는 울지 않오. 노을진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술 잔 속에 숨어 사는 우리는 마음의 노예 하늘에 빛이 없이 숨어사는 문둥이
별처럼.
▼.음식점 주인님의 흥타령~~~
▼.흥에겨워 어깨춤이 둥실 둥실~~~
▼.함께해서 즐거운 저녁 시간 ~~
▼.저녁을 끝내고 2차 노래방 화면 노래 가사를 보면 누구 때문에 이 노래를 불렀는지?
아는 사람 딱 한사람 그 사람 누구인지?
한조각을 잃어버려 이가빠진 동그라미슬픔에찬 동그라미 잃어버린 조각찾아
데굴 데굴 길 떠나네
어떤날은 햇살아래 어떤날은 소나기로 어떤날은 꽁꽁얼다 길옆에서 잠깐쉬고 에야 디야 굴러가네
어디갔나 나의반쪽 벌판지나 바다건너 갈대무성한 늪헤치고 비탈진산길 낑낑올라 둥실둥실 찾아가네
한조각을 만났으나 너무작아 헐렁헐렁 다른조각 찾았으나 너무커서 울퉁불퉁 이리 저리 헤메누나
저기저기 소나무에 누워자는 한쪼가리 비틀비틀 다가가서 맞춰보니 내짝일세 얼싸 좋네 찾았구나
기쁨에찬 동그라미 지난얘기 하려다가 아! 입이다쳐 말못하니 동그라미 생각하네 이런것이 그렇구나
냇물가에 쪼그리구 슬퍼하던 동그라미 애써찾은 한조각을 살그머니 내려놓고 데굴 데굴 길 떠나네
길 떠나네 길 떠나네 길 떠나네 길 떠나네
▼酒에 지존 드디어 떨어졌습니다. 때론 이럴때도 있어야 사람이지 않아 봅니다.
▼.이기대/장자산 및 신선대 산행 안내도
▼.일출맞이 이기대 백련사 오르는 길.
▼.카메라 고정해 놓고 일출 기다리는 산찾사 님...
▼.하루의 시작 여명이 밝아 옵니다...
▼.지평선 위로 차고 올라온 햇쌀은 너무도 검 붉고 눈이 부십니다.
▼.아침 햇살에 반사되는 광안대교 및 해운대 그리고 달맞이 고개..
▼.백련사 정상에서 바라본 광안대교 및 황령산.
▼.부산의 선지 해장국/된장에 야체를 넣고 밥을 비벼서 선지 해장국을 떠서 먹습니다.
▼.이기대 산행 시작~~~
▼.지난 밤에 달빛에 반사되는 바다 오늘 아침에는 햇살에 반사되는 눈부신 은빛바다.
▼.해안변 육지 연못에서 자라는 물옥잠 꽃 과 해운대 전경.
▼.공룡발자욱 바위..
▼.바위틈에서도 꽃을 피운 해국.
이기대(二妓臺)의
유래
이기대는 용호동 동쪽에 위치한 장자산(해발 225M) 자락과 접하여 있는 바닷가의 기기묘묘한
바위로 이루어진 약 2KM 정도의 해안가 일대를 말하고 있고 이기대라는 명칭의 유래는 다음
3가지 설로 요약된다.
첫째는 조선시대 좌수영의 역사와 지리를 소개한 동래영지(1850년 좌수사 李亨夏
편찬)에서
이기대라고 적고 있고 좌수영에서 남쪽으로 15리에 있으며 위에 두 기생의 무덤이 있어서
이기대라고 말한다고 할 뿐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둘째는 경상 좌수사가 두 기생을 데리고 놀아서 이기대라고 하였다는 말도 있으나 옛날
큰
벼슬을 한 괸리들은 가는 곳마다 기생놀이를 했고 그래서 이기대라고 했다는데 근거 없는
말이 아닐 수는 없으나 천민에 속했던 두 기생의 무덤이 있다고 경관이 빼어난 곳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도 일반적인 견해이다.
섯째는 수영이 향토사학자 최한복(1895~1968)에 의하면 임진왜란때 왜군들이
수영성을
합락 시키고는 부근의 경치좋은 곳에서 축하잔치를 열었는데 그 때 수영의 의로운 기녀가
자청해서 잔치에 참가하여 왜장에게 술을 잔뜩 권하여 술에 취하게 한 후 왜장을 안고 물
속에 떨어져 죽었다는 것인데 그래서 이기대가 아닌 의기대(義妓臺)가 맞는 이름이라고
하였다 한다.
그런데 이기대의 명칭은 공부(公簿)라고 할수 있는 동래영지(東來營地)에서 이미 150여년
전에 종전의 기록을 근거로 이기대라고 하였으니 가장 설득력이 없다고 하겠다.
▼.미아라 바위.
▼.망부석 바위.
▼.이기대의 유일한 폭포.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함.
▼.장자산 정상에서 바라본 신선대.
▼.장자산 정상에서 바라본 해운대 전경.
▼.오륙도를 바라 보면서 성개알, 돌멍게, 문어,홍합,고등 한사라에 쇠주 한잔 했지요.
▼.오륙도(물이 빠지면 5개 물이 차면 6개의 섬이 된다해서 ....)
▼.경부고속도로 동대구 톨게이트 200M 전방에서 우리의 렌트 봉고3 멈춤.
▼.동대구의 밤은 깊고 길었습니다.
▼.동대구 톨게이트에서 우리가 타고 있는체 견인차에 실려 집니다.
▼.요렇게해서 동대구에서 대전까지 두려움의 2시간 끝을 맺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