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용아장성 종주기(백담사계곡-용아장성-오색)
* 용아장성릉 가시는 회원님들 무사하고 즐겁게 다녀오세요.
여기 백담사에서 용아릉 오른 산행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용아장성 종주기(백담사계곡-용아장성-오색)
언제 : 2003년 7월 19∼20일 날씨 : 맑음 종주 인원 : 13명
기온 : 17∼27℃ 산행 시간 : 14시간 산행 거리 : 16km
<산행 경로>
02:00 06:55 08:25 09:00 |
용대리 도착 |
09:30 |
5봉 |
"등반은 노동처럼 유익하고, 예술처럼 고상하고, 신앙처럼 아름답다." "사람들은 왜 산에 오를까? 그리고 무엇이 그토록 어려운 곳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걸까? 단지 성취감 때문일까? 그것은 어딘가 부족하다. 하지만 무엇을 기대한다는 것 또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그곳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몰입이며, 그것 외에 다른 답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오르는 과정 중에 깨닫는 것이다. 굳이 산에 오르는 것 자체가 목적인 알피니즘에서 그 열쇠를 찾아야 한다.
-'히말라야 탈레이사가르 북벽 등반기:손재식'<탈레이사가르 등반과 알피니즘에서>-
국내의 많은 유명 산을 오르고 백두대간을 종주 하면서도 늘 남들이 오르지 못한 곳을 가고자하는 마음은 언제고 기대에 차있다. 내설악의 심장부인 공룡능선과 용아장성 그리고 화채능선에 오르고자하는 꿈은 산을 타는 누구에게나 간절한 소망이다. 공룡능선과 서북능선은 가끔씩 올라 내설악의 진면목을 조금은 접할 수 있지만 용아장성과 화채능선은 자연 휴식년제와 출입 통제로 오를 수 없다. 다행히 출입 허가를 받아 용아장성을 오를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얻어서 4차 백두대간 몇 명이 함께 산행하게 되었다.
정말 꿈같이 맑고 좋은 날씨가 용대리 하늘에 별을 수놓듯 총총하다. 뾰족뾰족 솟은 백담사 계곡의 첨봉들이 하늘의 별과 달이 함께 춤추듯 아름답다. 용대리에서 백담산장까지는 갤로퍼로 사람들을 세 번을 왕복하여 태워다 주니 8km의 거리를 수월하게 갈 수 있어서 편하지만 새벽의 소란은 별로다. 갤로퍼 짐칸에 앉아 비포장 도로를 달리면서 트럭을 타고 소백산을 오르던 기억을 떠올리며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는 산행의 묘미와 적절히 대처하는 순발력을 느껴본다.
백담사 계곡은 녹음기와 장마로 물이 충분하고, 계곡과 바위를 넘나드는 시원한 물소리는 새벽 공기를 가른다. 두 시간의 계곡 길과 오솔길을 걸어 영시암에 도착하니 반달이 법당 처마에 걸려 여명의 앞자락을 연다. 새들이 잠을 깨어 아침을 알리고, 조용히 들려오는 백담사 아침 범종 소리는 아늑한 계곡의 청정함에 적막을 드리운다. 남들보다 좀더 부지런을 떨어야 귀한 행운을 얻을 수 있음이 심산유곡 내설악의 깊숙한 자락에서 일깨움의 감회를 젖게 한다.
수렴동 대피소에 다다르니 어언 6시다. 모두들 아침 요기를 위하여 준비한 식사를 하고 일부는 라면을 끓여서 그룹별로 허기를 채운다. 수렴동 계곡의 물소리가 온통 산야에 가득하고, 차고 청정한 계곡 물은 용아장성을 오르는 모두에게 귀중한 워밍업과 준비로 부산하다. 백담사에서 수렴동 대피소까지는 4.7km이고, 수렴동 대피소에서 봉정암까지는 5.9km, 대청봉까지 2.3km라는 이정표와 함께 자세한 지도를 보며 모두들 솟구친 용아릉의 도전에 숙연하다.
특히 유학 갔던 아들을 데리고 온 우형은 조심스러우면서도 기대에 차있다. 오히려 아빠에게 이끌려 온 아들녀석은 기대와 두려움 속에 일행과 함께 한다.
용의 이빨처럼 생겼다해서 龍牙長城稜이라 불리는 이 능선은 내설악을 가르며 대청봉을 향해 뻗어 오른 모습이 커다란 장성 같다고 하여 붙여진 장쾌한 바위 능선이다. 수렴동 대피소 바로 앞에서 가파르게 10여분을 오르니 암부에 닿는다. 매우 초반부터 오르막이어서 숨이 찬다. 이 곳부터 암봉들이 고개를 들고 아침 여명을 받아 대청봉과 귀떼기청봉을 향하여 꿈틀거리며 이어진다.
날카로운 암봉을 오르고 암봉의 정점에 오를 때마다 왼쪽의 공룡능선과 오른쪽의 서북능선을 향해 서있는 나를 본다. 정말 내설악의 정점에 우리가 서있음이 실감난다.
첫 번째 위험 구간인 1m가 넘는 뜀바위가 있지만 우회하여 통과한다. 보조자일이 있으면 가능하다지만 너무 위험하여 비켜가기로 하였다. 밑에서 바라보는 뜀바위의 형태는 간담이 서늘하다. 어제 내린 비로 바위들이 많이 미끄럽다. 특히 나무 뿌리를 밟으면 상당히 위험하다. 모두들 앞사람의 통과를 유심히 살펴서 네 발로 주의하여 릿지 산행하듯 해야 한다.
뜀바위는 가능하면 아래쪽으로 내려서서 건너편으로 뛰는 게 좋다는데 다음 기회가 오면 꼭 건너뛰어 보고 싶다. 뜀바위를 지나서 15분 가량 더 가면 비석이 있는 바위에 닿고 거기에서 내려서 조금 더가면 촛대처럼 생긴 바위로 올라 가야하는 어려운 구간이 나온다. 촛대 모양의 바위의 왼쪽 모서리를 홀드와 스탠스를 이용해 오른 후 왼쪽의 바위로 발을 뻗어 건너가야 한다.
이 곳을 통과하면 50m쯤 위에 나타나는 7~8m 높이의 절벽을 올라야 한다. 홀드와 나무를 잡고 오르면 된다. 이곳에 올라서니 왼쪽으로 내설악 망경대와 오세암, 그 뒤로 펼쳐진 공룡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앞에 바로 일명 개구멍바위가 있다. 개구멍바위는 암릉 왼쪽에 수평방향으로 길게 놓인 크랙으로서, 엎드려서 기어 가야하는 곳이다. 굴뚝이 누워있는 모양(일명 침니)인 이곳은 첫 부분이 툭 튀어나온 바위를 안고 돌아가야 하는 곳인데 큰 배낭을 진 경우 지나가기가 불편하다. 튀어나온 바위를 안고 통과한 후 침니에서는 배낭을 최대한 바깥쪽으로 향하게 하고서 왼쪽으로 모로 누운 자세로 보조자일을 잡고 기어가면 된다. 이 때 건너편에서 또 한 사람의 안내자가 손과 발의 위치를 지적하여 주면 훨씬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다.
개구멍바위를 지나면 곧 왼쪽의 2m정도의 둥근 바위를 올라야 한다. 바위 중간의 볼트와 슬링을 이용해야한다. 왼손으로 슬링을 잡고 오른손으로 바위 위쪽 턱진 부분에 있는 볼트의 슬링을 잡고 오른다. 이 곳은 볼트와 슬링이 설치되기 전에 여러 명이 추락사했으므로 극히 조심해야 할 곳이다. 슬링의 상태가 좋아 모두들 여유 있게 통과하였다. 하지만 자일로 도와준 분들과 옆에서 보조하던 나를 남겨 두고 모두 사라진 모습은 조금은 안타까운 산행 예절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이 곳을 지나니 한동안 여유 있게 내설악의 전망을 즐기며 쉴만한 곳이 많다. 계룡산의 자연성릉을 많이 닮은 듯한 1봉부터 3봉까지의 능선에서 용아장성의 아름다움에 푹 빠지며 산행을 즐긴다.
수렴동 계곡의 폭포 소리와 첨봉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모두들 감탄과 사진 찍기에 정신이 없다. 정말 여유롭게 내설악의 파노라마를 감상하며 왼쪽의 망경대와 공룡능선을 바라보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맘껏 흐뭇해 본다.
많은 산과 계곡을 찾아 다녔지만 이 곳처럼 웅장하고 스릴 있고 짜릿한 절경은 경험하지 못하였다. 비록 구간이 험하고 위험하여 추락사가 빈번하지만 보조 자일과 안전 장비를 갖추고 통과한다면 내설악의 풍광을 맘껏 느낄 수 있다.
공룡릉과 서북릉, 백운동 계곡 그리고 곰릉, 구곡담 계곡이 한눈에 들어오는 능선에서 산에 오른 큰 즐거움을 함께 쾌청한 날씨와 더불어 큼직한 포만감을 느껴 본다.
4봉 쪽을 가다보면 완력을 필요로 하는 오버행 내리막이 있고 5봉을 지나면 새카맣게 그을린 고사목 지대도 나온다. 산불이 난 건지 번개를 맞은 건지 구별이 안되지만 새카만 장송들이 주변의 첨봉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이다. 6봉부터는 날카로운 능선을 피해 우회로를 이용해야 한다.
길고 지루한 오르내림은 체력 소모가 심하다. 잘 참고 따르던 우형의 아들이 드디어 체력의 한계가 온 듯하다. 산에 처음 오른다는 20대의 청년에게 용아장성은 무리인 게 분명하다. 아들을 붙잡고 절벽을 오르는 부자간의 힘겨운 사투가 계속된다. 곽 선배님과 후미를 담당하신 분과 나 그리고 우형의 도움으로 몇 개의 난관을 그래도 정신력으로 통과한다.
7봉의 완경사 암릉을 오르고 좁고 긴 암릉을 고도감과 조망을 느끼며 여유롭게 지난다. 9봉은 급경사를 가로질러 올라야 하는데 조심하지 않으면 천길 낭떠러지이다.
이 구간을 오르면 능선이 끝나고 마지막 하강 지점에 이른다. 하강을 위하여 두 개의 로프가 묶여 있는데 하나는 볼트에 하나는 나무에 묶여 있다. 다행히 다리를 의지할 돌출부가 많아 어렵지 않게 하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체력이 바닥난 20대 청년은 천신만고 끝에 아빠의 도움으로 하강할 수 있었다. 20여 미터 직벽 하강 코스는 돌출부가 많으므로 암벽 등반 경험자라면 자일 확보 없이도 내려설 수 있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면 고도감이 상당한 곳이라서 도보 산행만을 하던 사람이라면 자일 확보 없이 내려설 수 없는 곳이므로 주의해야할 구간이다.
이 곳을 내려서서 조금 가다가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 길이 둘로 나뉜다. 왼쪽 능선 사면의 길을 따라가면 곧 봉정암 사리탑에 닿게 되고 그 옆 계단으로 내려서면 봉정암이다. 언덕에서 오른쪽 길로 내려서면 봉정암 정문으로 이어진다.
하늘에서는 헬기의 굉음이 한창이다. 봉정암의 새로운 공사를 위하여 건축 자재를 운반하느라 난리이다. 조용하고 그윽한 향내음이 가득하던 선사에는 법당을 찾는 보살 님들의 왕래와 번듯하게 자리잡은 건축물들로 훼손되고 있음이 엇갈려 씁쓸함을 준다.
소진된 체력을 보강하고 식수를 채운 후 소청을 향하여 오른다. 발을 씻기며 조금의 휴식이지만 쉬니까 회복의 기미가 보인다. 젊은이의 정신력은 바로 곧추세워지는 듯 하다.
봉정암을 지나 소청 산장에 올라 지나온 용아장성을 다시 한번 돌아본다. 첨봉들을 오르내린 감회에 젖어 보는 것은 저 용아릉을 지난 사람만이 알 수 있겠다는 기쁨도 누려 본다.
소청 산장과 소청봉을 지나니 삽시간에 구름이 몰려든다. 설악의 날씨는 순식간에 변한다는데 주변의 첨봉들이 사라졌다 나타나고 또 사라진다. 중청을 지나 끝청을 다다르니 3명의 청년들이 귀떼기봉에서 야영하고 소청을 향한다 하며 머물고 있다. 젊은 그들이 정녕 부럽다. 며칠이고 산 속에 머물며 자연 속에 자신들의 우정을 쌓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히말라야 탈레이사가르 북벽 등반기에서 하늘에 오르는 길의 '생의 마지막을 같이 맞아도 좋은 벗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삶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산정의 아름다움도, 위대한 공간에서 얻는 자유도, 다시 발견한 자연과의 친밀함도, 산 친구와의 우정 없이는 무미건조하다.'고 하는 글귀가 정녕 가슴에 닿는다.
용아장성릉 종주로 인하여 위험한 코스를 통과하고 암벽을 오르내릴 때 서로 돕고 격려하며 힘을 나누는 것은 산행에서 얼마나 값진 우정과 좋은 벗이 존재하는지를 절실히 느껴본다.
끝청에서 오색까지의 하산 길은 넉넉하고 편하다. 대청봉에서 설악 폭포로 내려가는 길과 중간에 만난다. 비록 내달리는 맛은 없지만 후미와 함께 하며 종주를 마무리함은 기쁨이 한 움큼이다. 오색의 하산 길은 돌계단으로 마무리한다. 얼른 내려가서 온몸을 후딱 씻는다. 수술 후유증으로 고생한 육체를 차가운 자연수로 씻어 주니 아픔이 조금 가신다. 도저히 도전하기 어려운 여건에서 내설악의 자연을 파노라마처럼 느껴본 이번 종주는 너무 신나고 여운이 많아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듯하다.
또 하나의 도전인 화채능선도 언젠가는 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해보며 그윽한 차창너머로 한계령 정상과 내설악의 장관을 한껏 맛보며 귀향을 서두른다. 정말 좋은 산행이었고 무사하게 용아장성을 완주한 귀중한 벗들에게 감사함을 느껴본다.
용아릉은 1970년 요델 산악회가 초등한 후 1972년에는 동계 초등에도 성공했다. 한동안 난도 높은 암릉이었으나, 우회로가 많이 생기면서 설악산의 암릉 가운데 아마추어급 루트로 격하되었다. 우회로를 이용하면, 뜀바위와 개구멍바위, 턱바위, 봉정암 직전의 하강 구간만 조심하면 크게 어려운 곳은 없지만 암벽등반 경험자와 동행하는 것이 안전하다.
용아릉은 사전에 국립공원 관리소에 출입 허가증을 받아야 산행이 가능하고 산악 전문가가 필수적으로 함께 해야 하며 대략 5시간에서 8시간 정도 걸린다. 또한 추락사고가 많은 곳이므로 일반적인 도보 산행만을 한 사람과 노약자는 오르지 말아야 한다. 북한산의 만경대 릿지나 원효 릿지, 그리고 계룡산 장군봉이나 대둔산 릿지 코스를 가본 뒤 오르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