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장사익 선생님 공연 뒷풀이
언제 : 2011년 12월 27일
장소 :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공연보다 재미가 쏠쏠한 뒷풀이 장사익 선생님 공연을 보고 카페 동호회 회원님들과
뒷풀이에 참석을 했다. 그 큰 무대를 꽉 채웠던 공연단원과 함께하는 자리 .....
처음이라 좀은 어색했지만 한잔술이 오고가고 그 분위기에 금새 녹아든다.
왜? 사람사는 냄새가 가득하니까...내 마음까지 훈훈하다.
여기까지 엄청 좋았다.
예상치 못한 일 때문에 뒷풀이 공연이 중단되어 너무 아쉬운 저녁, 또 다음이 있기에.
아카펠라 솔리스츠와 최현배 선생님.
장선생님 마지막 헤여짐 곡 "소풍"을 합창하면서 또 다른 공연장에서 뵈어야지.
이게 아닌데 / 김용택 님 詩/노래/ 장사익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사는게 이게 아닌데
이러는 동안
어느새 봄이 와서 꽃은 피어나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러는 동안 봄이 가며
꽃이 집니다.
그러면서
그러면서
사람들은 살았다지요
그랬다지요
섬진강시인 김용택선생님의 시로 된 장사익선생님의 소리!!!!
내가 20대 때 이노래를 들었다면 구질구질 하다고 타박을 했을겁니다.
40대가 되서 들으니
내인생의 나무만을 보고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내인생의 숲을 바라보게 됩니다.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나름대로 하루하루 사느라고 애쓰면서 살았구나! 싶습니다.
노래는 기쁠 때 그 기쁨을 더욱 흥겹게 하고, 슬플 때는 그 슬픔을 더 진하게 한다.
죽음을 통하여 역설적으로 삶의 희망을 노래하는 장사익, 그의 노래가 특히 그러하다.
1994년 11월, 100석 규모의 홍대앞 소극장에 400명의 관객이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들어찼다.
45세의 한 남자가 무대에 섰다.
그에게는 첫 무대였다.
그는 그 무대에서 가요도 국악도 아닌, 그만의 창법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비로소 행복을 느꼈다.
드디어 오래 동안 끊임없이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 “내가 왜 태어났을까?”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 이래서 내가 세상에 나온 것이로구나!”
그로부터 소리꾼 혹은 가객(歌客) 장사익의 인생은 시작되었다.
100석짜리 소극장에서 시작된 그의 무대는 3천석이 넘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으로,
일본과 뉴욕 워싱턴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 해외무대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그의 공연 때마다 전 좌석이 매진되는 기록이 십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무대의 규모에 관계없이 처음처럼 그의 모습은 여전히 진솔하고 그의 창법은 독특하다.
늦은 나이에 출발했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고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음악세계를 지켜왔고,
그런 그에게 팬들은 환호했다.
장사익의 정체성
어떤 노래든지 장사익이 부르면 장사익류가 된다.
폭발하듯이 내지르고 부드럽게 꺾고 애틋하게 잦아들고 힘차게 뻗쳐오르는 그의 소리는 자유롭고 변화무쌍하다.
그가 부르면 노래는 소리로 확장되고, 그는 소리를 불러들여 또한 노래가 되게 한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트롯이나 록이나 팝이라는 특정 장르에 갇히지 않고 그저 ‘장사익의 노래’가 된다.
박자에 얽매이지 않고 길게 빼고 싶은 대목에선 한없이 느긋하게,
박자와 박자 사이를 치고 들어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박자를 벌려서 그 사이로 능청스럽게 비집고 들어선다.
그러니 얼마든지 노래에 감정이입이 자유로워서 그것이 청중과 함께 호흡하며 소통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그것은 그가 노래를 하기 전에 3년 동안 사물놀이패에서 태평소를 분 경력에서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상쇠의 꽹과리 소리에 맞추어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주가 가능한 놀이판에서
몸으로 익힌 흥과 신명은 거침없이 박자를 넘나들며 자신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자신감을 주었다.
그에게 노래는 음악이기 전에 먼저 삶을 이야기하는 내러티브이고
슬픔을 어루만져주는 한풀이이며 기를 북돋워주는 활력소이다.
따라서 그는 음악적인 완성도 이상으로 노래에 삶의 진정성이 얼마나 진득하게 들어 있는가에 더 집착한다.
삶의 진정성에 대한 집착은 장사익 노래의 가사가 우리의 감정에 착착 달라붙는 이유가 된다.
그는 시를 즐겨 읽는다.
시를 읽다보면 저절로 흥이 고조되면서 노래가 되는 시를 만난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미당 서정주 선생의 ‘황혼길’이며 천상병 시인의 ‘귀천’,
김용택 시인의 ‘이게 아닌데’ 김형영 시인의 ‘꽃구경’ 등이 나왔다.
그런 노래들은 시인이 오래 공들여 정제한 시어가 그의 토속적인 음색과 만나
모국어의 아름다운 울림으로 전율을 느끼게 한다.
그런가하면 데뷔하기 전 40대 중반까지의 좌절을 노래한 ‘찔레꽃’이나
폐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지켜보며 나온 ‘기침’같은 가사는
자신이 체험하고 느낀 삶의 희로애락을 진솔하게 표현한 것이기에 더욱 절절하게 폐부를 찌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장사익의 매력은 그 자신에게 있다.
사람들이 가객 장사익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그의 노래를 좋아하는지 헛갈리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그의 삶이 그의 노래이고 그의 노래가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노래처럼 얼마든지 유연하게 그리고 진솔하고 겸손하게 산다.
그는 여전히 장미보다는 ‘찔레꽃’ 향기 같은 사람으로 살고 있고,
‘사람이 그리워서’ 버스를 타고 외출하는 것을 좋아하고, ‘귀천’에서 나오는 소풍의 의미를 안다.
죽음을 알 때 삶이 보인다
그동안 그가 만든 노래 30곡 중에서 아홉 곡이 죽음에 관한 노래다.
1집 하늘가는 길, 3집 허허바다, 6집 꽃구경은 아예 앨범 타이틀곡이 죽음에 관한 노래이고
그밖에도 황혼길, 무덤, 아버지, 귀천 등이 있다.
그가 유난히 죽음을 자주 노래한 것은 도리어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죽음이란 삶의 거울이고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이다.
죽음에 대해 진지할 때 삶이 진지해진다.
죽음은 우리에게 새삼스럽게 생(生)의 유한함을 일깨워주며,
따라서 죽음 앞에서 겸손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죽음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일러준다.
그러므로 장사익이 말하고 싶은 것은 죽음의 절망이나 끝이 아니라
죽음이 반사해주는 삶의 희망이고 새로운 시작인 것이다.
장사익은 노래 외에도 타고난 재능이 많다.
농악을 했던 아버지의 끼를 물려받아 태평소를 잘 불고
특히 그의 한글 글씨는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의 옷에 응용되어 파리 패션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 정도로 예술적이다.
또한 글 솜씨도 뛰어나서 그가 보낸 편지를 받으면 시적인 표현과 아름다운 글씨에 감명을 받는다.
그가 문학과 서예 그리고 음악에 특별한 재능을 발휘하는 것은
선천적인 요인 외에도 그의 열린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마치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경계심 없는 그의 평상심은
모든 세상이치를 대뜸 본질로, 즉 통째로 받아들이므로 그에게는 무엇이든 자연스럽고 거침이 없다.
사진 속 장사익도 그러하다.
마치 몰래 카메라로 찍힌 듯이 사진 속 장사익은 그의 평상시 모습 그대로이다.
“수십 년간 수많은 사람들을 촬영해봤지만 장사익처럼 카메라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처음 봤다”는 사진가 김녕만의 말처럼
그의 영혼은 천진난만하고 자유롭다.
그의 노래가 그렇듯이 말이다.
인왕산을 바라보며 북악산 기슭에 기대어 있는 장사익의 집 마당에는 항상 새들이 날아와 물도 먹고 노래도 부른다.
새들은 지저귈 뿐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노래를 부른다 하고 어떤 사람들은 울음 운다고 한다.
삶과 죽음처럼 노래와 울음도 뒤집으면 같다.
그의 소리로써 사람들을 노래하게 하고 눈물 자아내게도 하는 가객 장사익.
그에게 노래는 그가 세상에 나온 이유이고 살아가는 행복이고 삶의 철학이기도 하다.
글/ 윤세영(월간 사진예술 편집장)
어머니 소리가 들린다.
"하얀 꽃 찔레꽃 / 순박한 꽃 찔레꽃 / 별처럼 슬픈 찔레꽃 /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
그래서 울었지 / 밤새워 울었지~" 고향 내음이 퍼진다.
'소리꾼'
무대 위에서 토해내는 소리가 모두 삶 그 자체다.
해금 선율, 무반주에, 재즈풍까지
가슴 적시는 시어로 청중들 압도
지난달 뉴욕 공연도'감동의 무대'"내 노래는 힘들었던 내 삶의 고백"
해 지는 줄 모르고, 배고픔도 잊고 뛰놀다가 어느 날 슬픔을 알게 된다. 일상의 무게를 느낀다.
장사익은 자신의 노래를 "어둡고 무겁다"고 말한다. 힘들고 어려운 나날 속에서 울고 웃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리 됐단다.
그래서 서로 "맞아 내 이야기야" 하면서 저절로 소통이 되고, 공감대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저는 노래라는 방식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것입니다. 세상사가 사랑 타령이나, 춤추고 흥겨운 것만으로 위로 받을 순 없잖아요.
노래하는 것은 유희가 아니거든요."장사익은 시를 읊는다. 시를 노래로 옮긴다.
"아름다운 시어들이 대중가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랫말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감동하고,
소리를 통해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장사익은
먼저 시를 찾는다. 그리고 수십번, 수백번 소리 내어 읊조린다. 때론 흥에 겨워 내지르고, 힘에 겨워 감아 들인다.
끊어버릴 듯 이어가다 꺾고, 애타게 쳐올린다. 그 사이에 높낮이가 생기고 장단이 붙어 시는 노래가 된다. 장사익의 음율이 생긴다.
오선지에 악보를 그리는 일은 그 다음이다.
1995년 출반한 1집 '하늘로 가는 길'부터 2집 '기침'(1997년), 3집 '허허바다'(2000년), 4집 '꿈꾸는 세상'(2003년),
5집 '사람이 그리워서'(2006년)를 거쳐 지난해 발표한 6집 '꽃구경'까지 많은 곡을 노래했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엮어 놓았다.
미당(서정주)의 시 '황혼 길'은 장사익의 소리를 타고 이미 사랑 받는 노래가 됐고 천상병 시인의 '귀천',
김용택 시인의 '이게 아닌데', 김형영 시인의 '꽃 구경'은 6집 음반을 통해 널리 퍼져가고 있다.
"어머니 꽃 구경 가요 / 제 등에 업혀 꽃 구경 가요 /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 어머니는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애잔한 해금 선율 하나로 '꽃 구경'이 시작된다. 도입부에 이어 무반주로 소리만 이어진다.
꽃 구경 가는 길이 죽음의 길임을 알면서도 세상으로 되돌아갈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를 그려진다.
무대에 선 장사익과 관객들이 마음으로 부둥켜 안고 서글피 운다.
지난달 18일 뉴욕시티센터에서 열린 장사익 소리판 '하늘로 가는 길' 공연 때도 2,700의 객석은 감동의 물결로 가득했다.
꾸밈없는 소리는 가슴을 울렸고, 절절한 그리움에 눈시울을 적셨다.
"미국에 온지 40년이라는 70 노인이 '장 선생 노래 듣고 오늘 처음으로 가슴이 뻥 뚫렸다'는 겁니다. 사인도 받지 않고 가시더군요."
장사익은 오는 12일 세종문화회관에 선다. '따뜻한 봄날 꽃 구경'이란 소리판을 연다. 올해만 전주, 울산, 공주에 이어
4번째 국내 공연이다. 지난해 11월에 열린 '꽃 구경'의 앙콜 공연 형식으로 1~2부는 죽음과 삶을 주제로 역설적 희망을 노래하고, 3부는 '
돌아가는 삼각지' '동백 아가씨' 등 대중 가요를 부른다.
"무대에서 저는 큰 그림만 그려요. 현악기, 타악기, 건반 악기들의 들고나는 것은 서로의 소통과 교감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딱히 틀을 정해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놀이 마당이나 재즈 공연처럼 즉흥성 강하게 판을 만든다.
장사익은 충남 광천에서 갯내음을 맡으며 자랐다. 노래하기 전 전자제품 외판원, 보험 영업사원, 가구점 점원, 카센터 관리 등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그러다 새납(태평소)과 농악에 빠져 들었다.
1993년 전주대사습놀이에서 '공주농악', 1994년에는 '금산농악'으로 장원을 차지했다. 이 때 삐리리리 새납을 불었다.
그리고 뒤풀이에서 노래를 불렀던 것이 인연이 돼 '소리꾼'으로 살고 있다.
장사익은 지금 행복하다. 자주 웃는다. 굵은 주름 사이엔 노래하는 즐거움이 깊게 배어 있다.